[소설] 581.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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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제13장 희망캐기 16

"우째됐든간에 호랭이를 잡을라카면 호랭이굴을 찾으라는 말이 있잖습니껴. 마음 같아서는 그느마를 엎어놓고 복날 개패듯해서 사람 구실 못하도록 맹글고 싶지만 승희씨가 만류를 한다카이 우선 참기로 하고, 먼 발치에서 가게 돌아가는 꼬라지나 한번 보시더. "

"안가보고 어떻게 하께라우. 허지만 횟집에서 횟거리 팔고 있지, 인절미 팔고 있겄소. " "나도 한때는 1t트럭 굴리면서 주문진 공판장에서 서울 강남까지 활어 운반해주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더. 그느마도 횟집을 경영한다면, 응당 단골 활어장사가 붙어있을 꺼 아입니껴. 우리가 머리만 잘 짜낸다카면, 그느마 뒤통시를 쳐서 당분간은 가게 문을 닫지 않으면 안되도록 맹글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한데…. "

"시방 단골로 거래하는 활어장수라 했지요이□ 그거 울고 싶던 김에 따귀 때려주는 말 같은디? 하지만 쩌그 머신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활어를 떼오는지도 모르지 않겄소?" 청해식당은 경찰서에서 불과 두 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이면도로에 자리잡았지만, 먼 발치에서 보아도 가게 치장에 돈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날림공사로 얼추 모양새만 꿰어 맞춘 부근의 다른 식당과 비교하면 단연 돋보인 까닭이었다. 대낮인데도 실내 조명을 환하게 밝혀두고 있어 멀리서도 청해식당의 존재를 얼른 가늠할 수 있었다. 하는둥마는둥 시늉만 하고 있는 장삿속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죽기 아이면 까무래치기로 목돈 투자해서 시작한 식당이 분명한데, 불각시에 요리사가 그만두고 가겠다 했으면 내라도 열딱지 오르게도 생겼습니더. " "열받았다고 멀쩡한 여자를 절도범으로 몰아세우면 사람 구실을 못하제. "

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좁은 거리는 풍선처럼 팽창하기 시작했다. 먹거리들을 팔고 있는 근처의 식당들에서 일제히 불을 켜기 시작했고, 내왕도 활기를 띠었기 때문이었다.

활어 운반차량이 식당 앞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운전석을 내린 상인이 적재함에서 활어를 건져냈다. 그리고 식당에 설치된 수조에다 옮겨 넣기 시작했다. 산오징어가 많은 것으로 보아 동해쪽 항포구에서 달려온 운반차가 분명했다.

운반 상인이 식당과 거래를 끝내고 운전석에 오르기까지 두사람은 줄곧 식당의 동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시동을 건 차가 식당 언저리를 벗어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달려가 손을 들었다. 운전석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상인에게 잽싸게 다가가며 광어나 전어나 도다리나 산오징어를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찍자를 붙이자는 건달이 아니란 것을 밝혀둘 필요가 있었다. 활어를 사겠다는 말에 상인은 당장 차를 길가로 붙여세웠다. 솔깃해 하는 눈치로 보아 그 역시 뜨내기 운반상인이 분명했다.

단골 식당을 여럿 두었다면 불쑥 나타난 뜨내기 구매자와 흥정을 벌일 까닭이 없었다. 상인을 상대로 쑥덕거리던 두사람이 운전석으로 올라 조여 앉았다. 퇴계로에 있는 횟집까지 활어 배달을 마친 세사람이 근처의 소머리 국밥집 앞에 차를 주차시켰다.

사십대 초반인 활어운반 상인 역시 제약회사의 운송부에 재직하다가 구조조정으로 밀려나 실직생활 일년의 고초를 겪은 사람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공판장에서 활어를 떼다가 서울의 횟집으로 배달해주는 장사를 시작한지 일년을 넘겼는데, 일년 동안 식당의 청소까지 해줘 가며 거래를 튼 단골이 불과 세군데였다.

그나마 모두 골목길 안에 숨어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는 식당들이어서 걸핏하면 외상이었다. 공판장에서 활어를 구입할 때는 에누리없는 현금을 건네줘야 하는데, 그 활어를 수조에 실어 신주단지 모시듯 허위단심 서울까지 운반해 외상으로 넘기고 있는 자신이 올곧은 정신 가진 사람인지 회의를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란 하소연만 30분 이상 들어줘야 했다.

더욱이나 차까지 수조 적재함으로 개조했기 때문에 종잣돈을 까먹고 있다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당장 손을 떼지 못하는 얼치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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