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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에서 소주폭탄 마시고 개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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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전화했는데 믿지를 않는 거야.”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4000m를 가 본 사람과 가 보지 않은 사람.”

“사실 우리도 포기했을 거야.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소통이 안 돼 아예 얘기를 못 해서 그렇지.”

“맞아, 누군가 옆에서 철수하자고 했으면 금방 만장일치가 됐을걸?”

“아, 초콜릿! 배낭에 있었는데 왜 인제 생각나지?”

“난 곶감도 있었는데….”

오른 곳이 4000m가 채 되지 않는데도 우린 스스럼없이 ‘4000m의 사나이’ ‘4000m의 철녀’로 규정짓고 있었다. 그뿐이랴. 아예 히말라야 등반의 노하우를 거의 다 터득한 사람들이 돼 있었다.

“우리는 산에 왕초보잖아. 그러니 히말라야 간 거나 다름없어.”

정말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한 사람은 입맛이 없어 식사도 못 하겠다며 잠자러 올라갔다.

“가다 보니 자꾸 나 자신이 변하는 거야.”

'4000m 철녀'의 한 마디가 알프스 무한도전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했다.

“상황에 따라 내 마음도 단계가 있더라고. 처음엔 갈 만한 거야. 그러다 어, 조금 힘드네 했어. 이 정도야 하면서 참고 계속 갔지. 그런데 한참 오르다 보니, 이거 가야 되나 싶어. 그래서 뒤돌아보면 다들 오고 있어. 할 수 없이 나도 움직여. 마지막 단계가 어떤 줄 알아?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싶은 거야. 그런데 가슴 속에서 오기가 치밀어 올라. 포기할 수는 없지 하는 자존심이 울컥하지 뭐야.”

“나는 산장의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그걸 생각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아, 그거요? 사실 다른 뜻으로 얘기한 겁니다. 맥주를 마실까 봐서.”

가이드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겨울이 아니면 눈보라 치는 날이 별로 없다는 얘기였다. 보통 빙하를 걸어 올라도 전혀 춥지 않고 햇볕이 쬐니 땀이 많이 난다. 그렇게 산장에 도착한 한국인들이 목이 말라 시원한 맥주를 찾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술기운이 오르고 산장의 분위기에 한껏 도취돼 갔을 때 누군가 배낭에서 서울서 가져온 팩소주를 꺼냈다.

그들은 알프스 맥주에 한국 소주를 섞어 다국적 소폭(소주폭탄주)을 제조해 돌렸다. 문제는 하산할 때였다. 저마다 뱃속에 퍼부은 폭탄에 고소증이 불을 붙였다.다들 뱃속이 난리가 났고, 파편은 입 밖으로 튀었다.

“알프스에서 소폭 마시면 개고생입니다.”

그날 무한도전 팀은 뺨부터 손발까지 온몸이 얼어 맥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덕분에 무사히 하산해 클라이네 샤이데크의 밤을 어지간히 시끄럽게 했다.

융프라우요흐 글·사진=배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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