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580. 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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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제13장 희망캐기 (15)

"복수를 하겠다니? 그러면 사건은 더욱 복잡해지고 해결은 물 건너 보내는 거에요. "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야그 못들어 봤소? 말로 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개자식들은 누린내가 나도록 맞아 봐야지 불찰을 알게 되겠지요이. "

"그 게 날 도와주는 게 아니에요. 분란만 커집니다."

"분란이 커질 수도 있겠지요이. 그러나 승희씨도 알다시피 나가 배운 게 없어서 한선생처럼 순리대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겠어라. "

그 순간, 승희는 핏대 오른 방극섭의 손을 잡아 끌었다. 우선 방극섭의 흥분부터 가라앉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두면 한달음에 청해식당으로 달려가 앞 뒤 사정 가리지 않고 북새통을 놓을 조짐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째 외간남자 손을 잡고 이러시요이? 그 놈을 무고죄로 걸어 넣을 재간이 없었다면, 나가 서울로 뛰어 올라 오지도 않았어라. 시상 인심이 아무리 개차반이라지만, 천사나 다름없는 승희씨를 감방에다 집어넣고 네 활개 뻗고 자는 연놈들을 두고만 보자는 것잉가?"

교도소처럼 접견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장바닥처럼 번잡스런 강력계 형사실에서 철제 의자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피의자들을 불러 앉히고 조서를 받고 있는 형사들의 위협적인 목청만 듣고 있어도 식은 땀이 날 만큼 두려운 장소였다. 그런데 방극섭의 고함 소리까지 겹쳐 귀가 윙윙거릴 지경이었다. 곁에서 피의자 조서를 받고 있던 형사로부터 조용하라는 주의를 몇 번이나 들었어도 그의 목청은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감당할 수 없었던 승희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고, 질끔했던 방극섭도 그제서야 자제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발 폭력을 쓰지 말아 달라는 승희의 간곡한 청을 듣고 경찰서를 나섰다. 경찰서 정문 밖에는 박봉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흥을 떠나면서 안면도부터 들러 박봉환과 서울로 동행한 것이었다. 경찰서 맞은편 길가의 연석선에 청승스럽게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박봉환은 해적해적 정문을 걸어 나오는 방극섭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났다.

"우째…. 승희씨 만나 봤습니껴?"

"만났어라. "

"재주도 좋네요. 우째 면회가 됩디껴?"

"재주랄 것도 없어라. 무고로 억울하게 갇힌 사람인데, 면회까지 안시키겄소. "

"억울하다 카는 걸 형사들도 알고 있습디껴?"

"억울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낭패 아니겄소. 승희씨도 어찌할 방도가 없었던지 나 보는 면전에서 눈물을 보입디다."

"큰일 났네요. 길거리에서 이러지 말고 어디 들어가서 차근차근 이바구 합시다."

"차근차근 야그할 건더기도 없어라. 억울하다는 것만 알아낸 게 다지요. "

박봉환은 윗도리 주머니에 집어 넣었던 꽁초를 꺼내 다시 불을 댕겼다.

"쩌그 뭐시냐. 그 싸가지 없는 청해식당이 워디 있는지 저 쪽으로 가 봅시다."

"어째됐든 간에 그느마를 만나 담판을 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더. "

"승희씨 야그 듣자니, 그 안주인이란 여자가 불여우랍디다. 승희씨가 거짓말은 안하제. "

"하찮은 똥에도 방귀라는 사촌이 있습니더. 씨발년이 모사꾼이라 카더라도 사내 새끼도 뒷다리 정도는 들어줬을 낍니더. 그렇기 때문에 말로는 해결될 일이 아인지도 모르지요. "

"식당으로 쳐들어 가서 난동은 피우지 않기로 나가 승희씨하고 약속을 했뿌렀소. 그렇게 되면 그 연놈들 입장만 유리해질 뿐이어라. 우리까지 엮여 들어가 콩밥 먹는 신세 되뿔면 승희씨 역성 들어 줄 사람은 어디 가서 찾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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