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컨설팅 ‘꿈은 이루어진다’] 경남 김해 월산중 3 안혜린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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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 망원경으로 낮에도 별을 관측할 수 있어.” 천문학에 관심을 가진 안혜린양(오른쪽)에게 멘토 정은정씨가 지름 21m인 전파 망원경에 대해 설명해줬다.[최명헌 기자]

‘목표가 뚜렷하면 공부도 더 열심히 할 텐데….’ 자녀에게 진로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없는 부모들은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도 성적 걱정은 하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꿈을 찾지 못하는 딸에게 엄마로서 충분한 조언을 해주지 못해 미안했다”는 김덕자(41·경남 김해시)씨의 사연이 열려라 공부팀에 도착했다.

최은혜 기자

“어느 날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대학 가려면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필요하대.’ 꿈을 찾고 싶어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잘 모르니까 길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날 이후 김덕자씨는 딸 안혜린(김해 월산중 3)양과 함께 신문을 뒤졌다. 대학과 학과의 종류에 대해서라도 알아두면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해서다. 또 어떤 직업들이 있는지도 살펴봤다. 하지만 혜린이의 궁금증은 쉬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꿈은 이루어진다’ 기사를 접했다. 김씨는 “한 줄기 빛을 만난 듯 환해졌다”고 말했다.

관습형 직업, 예술형 취미로 소질·흥미 살려

혜린이는 우선 온라인으로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MLST 학습전략 검사에서 혜린이는 학습에 필요한 효능감·자신감·실천력 등이 양호한 상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집중력과 책 읽기 분야의 점수가 낮았다. 한국 가이던스 한근영 심리학습 연구팀장은 “이대로 고교에 진학할 경우 학습 효율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혜린이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집중력을 보강하기 위해 뚜렷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 팀장은 “휴대전화·MP3·만화책 등 방해 자극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필기도구·교과서·사전 등 공부에 도움이 되는 자극들은 손에 닿는 곳에 두라”며 “집중이 잘 되는 주변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습흥미 검사 결과에서는 혜린이가 국어·수학·음악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미술·사회 관련 분야에 대한 흥미가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소 여행이나 미술에 관심이 많던 혜린이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였다. 또 탐구형 학습에 대한 흥미가 높아 실험·관찰·예상·추론과 같은 활동을 활용한 학습이 적합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진로 탐색 검사 결과 기업형·사회형 흥미가 매우 저조한 반면 예술형·관습형 유형의 점수가 높았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보다는 미술가·애니메이터와 같은 미술 관련 직업이나 꼼꼼함·정확함이 요구되는 직업이 좋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어머니 김씨는 “혜린이가 지리를 좋아하고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해 여행 가이드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며 “검사 결과를 보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예체능 계열 진학에 대해 혜린이 스스로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인 만큼 관습형 직업을 선택한 뒤 그림 그리기나 미술품 감상 등 예술형 취미를 갖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천문학 연구 대상은 무궁무진, 선진국들 앞다퉈 투자

천체 관측 도구 [중앙포토]

혜린이는 검사 결과에 따라 관심 가는 직업·학과에 대해 조사했다. 최근 지리·지구과학에 재미를 느낀 혜린이는 지리학과 천문학을 두고 고민했다. 혜린이는 “미래에는 천문학이 유망하다고 해 좀 더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혜린이의 멘토로 연세대학교 천문학과 박사과정에 있는 정은정(32) 연구원이 나섰다. 연구실을 찾은 혜린이는 천문학 연구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들여다봤다. 정씨는 “천문학이라고 해서 예쁜 별만 쳐다본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주의 물리량·구조·진화 등을 실제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수학과 물리가 기본이라는 것. 해외와의 공동 연구가 활발하고 행성 관측을 위해 해외에 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영어 실력도 필수다.

정씨는 자신이 관측해 연구 중인 은하 사진을 보여줬다. 지구로부터 6500만 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은하라고 했다. 정씨는 “김연아 선수가 점프 한 번을 위해 체력 훈련을 많이 하듯 천문학도 관측하는 시간보다 책상 앞에 앉아 연구하는 시간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천문학은 어떤 천체를 어떻게 관측할까 하는 발상과 꼼꼼한 데이터 처리 과정, 분석이 중요한 학문이다.

정씨는 연세대학교에 자연과학부로 입학한 뒤 천문학과를 선택한 경우다. 그는 “전공을 결정할 당시 어머니께서 ‘무슨 별 볼 일 있냐?’며 마뜩잖아 하셨다”고 웃으며 “가난한 학문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세계적으로 선진국들이 앞다퉈 투자하는 분야인데다 연구 대상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졸업한 뒤에는 국내외 천문연구소 연구원·천문대 연구원·교수·교사·과학 서적 출판업 등으로 진로를 정할 수 있다. 정씨는 혜린이에게 틈틈이 www.kasi.re.kr(한국천문연구원), www.nasa.gov(미국 항공우주국) 등 관련 웹사이트에 올라온 사진이나 자료를 보고 질문도 해 볼 것을 추천했다.

혜린이는 정씨와 함께 우리나라에 3대가 있다는 KVN(한국우주전파관측망) 시스템의 전파 망원경을 구경했다. 연세대 캠퍼스, 울산, 제주에 각각 떨어져 있는 망원경들이 수집한 자료를 모아 더 먼 행성을 보다 세밀하게 관측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정씨는 “앞으로 한국·중국·일본 공동 관측 연구에서는 한국이 중심 본부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혜린이는 지름 21m의 망원경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천문학이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것 같아요. 3년 후 멘토 언니의 후배가 되기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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