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꿈을 찾아, 무대를 찾아 …

중앙일보

입력


“한두 번쯤 대학가요제 출전에 욕심을 냈던 세대죠. 이러저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꾹꾹 눌러왔던 꿈을 이제야 펼치는 거예요.” 직장인밴드(이하 직밴) ‘브라운밴드’에서 일렉기타를 맡고 있는 이태승(47·이안종합건설 대표)씨는 옥슨80의 ‘불놀이야’를 연주할 때마다‘짜릿하다’고 했다. 일터인 대전에 머물다가도 매주 수요일이면 일산 백석동 합주실로 한달음에 달려오는 이유다.

" 시간·실력·취향 맞추기 힘들어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함께 즐겨 전문공연장축제 참여 등 지원을 "

일산은 직밴의 아지트

브라운밴드처럼 근무지는 달라도 일산에 거주하는 직장인들로 구성된 직밴은 현재 20개 팀이 넘는다. “활동이 미미한 팀까지 포함하면 30개에 이를 것”이라는 게 합주실 ‘스튜디오락’ 차정렬(42) 대표의 말이다.

일산에 직밴이 활성화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다. 직밴 결성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때이기도 하다. 이씨는 “때마침 신도시 형성이 마무리되면서 일산에 인구유입이 는 것이 직밴 활성화의 단초가 됐다”고 소개했다. 30~40대 연령층이 일산에 대거 들어오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직밴이 생겼다는 것.

초창기 이들의 구심점은 즐밴·프리밴드 같은 온라인 카페였다. 이후 일산직장인밴드연합(이하 직밴연합)으로 온라인 모임이 옮겨졌다. 직밴연합의 현재 회원수는 920여 명. 요즘도 하루 1~2명씩 회원이 꾸준히 늘고 있다. 직밴연합에 정규밴드로 등록된 팀은 8개다. 대기중이거나 잠시 쉬고 있는 팀도 8개나 된다.그 외 네이버 직밴 연합모임인 ‘음악스케치’에 적을 둔 밴드 등이 활동중이다.

직밴연합 운영진인 이씨는 “온라인 카페는 결원 멤버를 충원할 수 있는 통로이자 직밴운영에 필요한 정보공유의 장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소개했다.

온라인 카페와 더불어 직밴의 활동에 불을 지핀 것은 합주실이다. 2006년 일산직밴 전문 합주실로 문을 연 일산실용음악아카데미(일산동구 백석동)는 마땅한 연습공간이 없어 서울로 떠돌던 직밴연합 밴드들을 일산으로 불러들이는 데 한몫했다. 지난해 7월엔 스튜디오락(일산동구 백석동)이 생겼다. 직밴이 쓰는 일산의 합주실은 7~8곳으로, 이용요금은 시간당 1만~1만5000원이다.

새로운 나를 찾는 시간

“서울에서 연습한다면 포기해야죠.”
워킹맘 박상희(38·일산서구 장항동)씨가 직밴(달고나) 활동을 직장생활·집안일과 병행할 수 있는 것은 집 가까이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번이지만 퇴근 후 연습실을 찾기가 박씨에겐 그리 쉽지 않은 일. 연습이 끝나고 늦은 밤이나 새벽에 귀가할 때면 합주실이 집 근처라는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직밴의 연습은 대개 오후 8시 넘어 시작된다. 2~3시간 연습이 끝난 후 뒤풀이가 이어지면 새벽 1~2시나 돼야 집에 돌아간다.“아무래도 귀가부담이 적어 연습보다 뒤풀이가 길어질 때가 더 많다”는 이씨는 “그만큼 멤버들의 관계가 끈끈해진다”고 귀띔했다. 번개모임도 언제든 가능하다. 그러나 지역이 한정되다보니 멤버 확보가 원활하지 못한것이 단점이다. 간혹 서울과 인근 지역에서 오는 멤버가 있긴 하지만 많지 않다.

“직밴은 구속력이 없는 데다 연습시간을 맞추기 힘들고 멤버 간 음악취향과 실력차도 커 팀의 이합집산이 잦다”는 차 대표는 “연주실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를 찾는 ‘여유로운 시간’으로 인식하는 밴드가 오래 가더라”고 전했다.

일산에 직밴이 설 무대가 없는 것도 숙제다. 라이브카페가 대여섯 군데 있지만 밴드 공연엔 적합하지 않은 실정. 일산동구 풍동과 덕양구 화정의 몇몇 라이브카페는 운영상 어려움으로 문을 열자마자 닫았다. 직밴의 주요 무대였던 스트리트형 쇼핑몰 라페스타의 중앙무대도 2년여 전 ‘시끄럽다’는 민원이 생겨 더이상 설 수 없게됐다.

“들려주지 못하는 음악을 하는 듯해 안타깝다”는 차 대표는 “홍대 인근 무대를 전전하다 보면 일산에서의 밴드전문공연장 활성화가 절실해진다”고 말했다. 이씨도 “직밴활동은 예술의 저변확대로서의 의미가 크다”며 “지역축제에 직밴의 참여를 유도하는 등의 고양시 지원책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 김은정 기자 hapia@joongang.co.kr >

< 사진=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