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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가제 법제화' 싸고 논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도서정가제' 입법 추진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국민회의 길승흠의원 외 27명의 의원이 가칭 '저작물의 정가 유지에 관한 법률' 을 23일 발의해 국회에서 법안심의가 이뤄질 예정이다. 심의가 순조로울 경우 빠르면 다음 달 도서정가제의 법제화가 결정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책을 할인판매하는 곳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발행이 2년 지난 도서제외)을 물어야 한다. 또 최근 늘고 있는 인터넷을 통한 책의 할인판매도 전면 금지된다.

전에 없었던 제재규정을 포함한 도서정가제의 법제화에 대해 출판계는 "서점.출판 운영의 버팀목이 될 것" 이라며 반기고 있다.

반면 정가제는 자유시장 경제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현재 책을 할인판매하는 인터넷 서점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에서 예외적으로 도서정가제를 인정, 출판업계가 자체적으로 관련 규약을 마련해 정가판매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최근 일부 출판사들이 공급하고 있는 책으로 대형 쇼핑몰에서 최고 35%까지 책을 할인하는가 하면 인터넷 서점의 급성장으로 도서정가제가 유명무실해지고 있어 정가제를 아예 법률로 못박자는 게 이번 입법 추진의 배경이다.

서점계.출판계가 도서정가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책이 지식산업의 근간이자 일반 공산품과는 다른 지적 저작물이라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제도가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가격담합이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상품마다 고유한 창의적 가치를 표시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또 도서정가제가 붕괴되면 가격 경쟁으로 인한 덤핑물의 범람, 이에 따른 출판의 질적 저하가 우려되며 최근 격감하고 있는 중.소형 서점들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인정되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의 경우 81년 도서가격법인 일명 '랑법' 을 제정했다.

한국서점조합 연합회 이창연 회장은 "'아마 '정가제가 없다면 출판이 대중물 중심으로 흐르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인문.학술은 더 황폐화 될 것이며 소비자들도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서 할인을 전제로 한 가격산정이 불가피해 길게 보면 책값의 앙등을 초래한다" 말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에 대한 반발도 만만찮다. 먼저 책값에 대한 불만이다. 1권으로 묶어내도 될 책을 2권으로 나눠 내거나 미리 소수를 겨냥한 전문.학술서의 경우 책값을 아예 높게 책정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공급자가 소매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독점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고 할인매장은 소비자들에게 책을 싼 값에 공급하는 장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 인터넷 서점 업계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이들의 경우 법이 통과되면 현재 20% 내외로 할인하고 있는 영업방식을 포기해야할 처지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점 알리딘의 조유식 대표는 "영국 등에서는 운송비가 따르는 전자상거래가 거래 방식의 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는 만큼 정가제의 범위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며 "이번 법안은 책을 통한 전자상거래를 없애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문화계에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상업적인 책보다는 양서를 많이 만들 수 있고 현재의 유통시스템을 보호할 수 있는 만큼 긍정적인 견해가 앞선다.

하지만 지금 현재 발의된 내용 그대로 도서정가제 법안이 통과될 경우 그 부작용도 없지 않은 만큼 이해가 엇갈리는 부분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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