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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저널] 퀴즈쇼 열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국에 난데없이 TV 퀴즈게임 열풍이 불고 있다. 유명 퀴즈게임이 방영되는 날이면 직장인들이 서둘러 귀가하고, 주로 스포츠나 뉴스 프로그램에 맞춰져 있던 식당과 바의 TV채널도 이쪽으로 고정된다.

퀴즈게임 열풍을 몰고온 것은 ABC방송의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 이다. 최고 1백만달러(약 12억원)의 상금이 걸렸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이다.

'백만장자' 는 지난 여름 프로그램 개편 때 시청률이 저조한 한 미니시리즈의 대타로 도입됐다. 당초엔 방송사측에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으나 예상을 깨고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백만장자' 는 회당 평균 2천3백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으며 황금시간대(프라임타임)의 간판프로그램으로 우뚝 섰다. 돈은 얼마를 내도 좋으니 무조건 광고만 내게 해달라는 광고주들이 줄을 이었다.

지금까지 미 국민의 절반 가량인 1억3천만명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통계도 나왔다. 진행자인 레지스 필빈이 독촉하듯 내뱉는 "이게 당신의 마지막 대답입니까□" 라는 말은 이제 미 전역의 유행어가 됐다.

'백만장자' 는 지난주 드디어 세계 TV쇼 사상 처음으로 진짜 백만장자를 탄생시키며 그 열기를 더하고 있다.

행운의 주인공은 코네티컷주의 국세청(IRS)요원인 존 카펜터(31)였다. 그는 지난 19일 내리 15문제를 맞히며 단숨에 1백만달러를 거머쥐어 전국적인 스타가 됐다.

퀴즈게임 열풍은 인터넷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ABC방송의 웹사이트는 도처에 '백만장자' 소개가 즐비하다. 미처 TV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주요 장면과 역대 전적을 확인한다.

실제 돈이 걸리지는 않지만 인터넷으로 직접 이 게임에 참여할 수도 있다. ABC에 따르면 지난 7일 '백만장자' 를 웹사이트에 올린 이후 매일 30만명 이상이 접속하고 있다.

'백만장자' 가 단시간 내에 폭발적 인기를 끌자 모방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경쟁사인 폭스TV는 비슷한 시간대에 더욱 자극적인 퀴즈게임을 신설했다. 이름하여 '탐욕(Greed)' 이다.

'백만장자' 는 출연자가 맞힌 문제 수에 따라 상금을 주는 데 비해 '탐욕' 에서는 다음 단계로 진출할 때마다 포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음 문제를 못 맞히면 상금은 모두 날아간다. 짜릿한 도박성을 더욱 높인 것이다.

CBS와 NBC도 조만간 50년대 간판 퀴즈게임이었던 '21' 과 '도전 6만4천달러' 를 각각 재개할 움직임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초 안방극장에는 모두 예닐곱개의 퀴즈쇼 프로그램이 각축을 벌일 전망이다.

이같은 퀴즈게임 열광 현상에 대한 분석도 가지가지다. 퀴즈게임이야말로 현대 미국사회의 천박한 경쟁심리를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보통사람도 얼마든지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지난 50년대 조작 시비에 휘말려 대부분 사라졌다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재등장한 TV 퀴즈쇼가 아무런 부작용없이 순항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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