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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죽음' 명예역장 담비 주인 "취임 전부터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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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애완견으로 주목을 받으며 대구 지하철 반월당역 명예역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던 담비가 취임식 날인 지난 22일 사고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연합뉴스]

대구도시철도(지하철) 명예역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었던 초미니 애완견 ‘담비’가 취임 당일인 22일 사고로 죽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세한 사고 경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담비의 주인인 이창민 이수의과동물병원 원장은 "누구의 책임이라고 돌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여러 여건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난 사고였다"고 말했다.

이 원장에 따르면 이날 담비는 그가 운전하는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다. 차 안에는 서울에서 촬영 나온 모 방송사 취재팀도 함께 있었다. 이들 일행은 오후 2시 30분쯤 승용차가 대구도시철도 1호선 반월당역에 마련된 명예역장 취임식장에 도착했다.

이 원장은 담비를 행사장까지 태우고 갈 미니 휠체어를 꺼냈고 담비를 태우려 뒷문을 열었다. 순간 담비가 갑자기 보도블록 쪽으로 돌진해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쓰러지고 말았다. 담비는 사고 직후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이 원장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원장은 "사고 전부터 담비의 취임과 관련해 내키지 않은 점이 많았는데 결국 이렇게 끝나고 말았다"고 말했다.

담비의 취임은 일본의 유명한 고양이 역장 ‘타마’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진행됐다. 승객의 감소로 폐쇄위기에 처했던 와카야마 전철 키시역에 타마가 역장으로 취임한 뒤 관광명소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수 개월 전 모 기자로부터 '타마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이후 대구도시철도 측과 연결됐다"며 "좋은 취지로 흔쾌히 동의해 진행된 일이었지만 매일 직접 담비를 출퇴근 시키는 문제 등 책임이 점점 많이 전가되는 양상이었다. 철저한 준비 없이 일이 너무 빨리 진행돼 이러다 담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불안함이 컸는데 결국 죽어서야 일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내키지 않았던 점은 담비의 근무 환경이었다. 생후 2년 6개월이 조금 지난 담비는 키 10.5cm, 몸무게 750g의 티컵 강아지다. 담비는 반월당역 1호선 대곡 방향 매표소 옆에 마련된 3㎡의 집무실에서 유니폼을 입고 '상근'을 할 예정이었다. 근무시간은 평일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그는 "병원 밖에서 생활해 본 적 없는 티컵 강아지가 외부에 노출돼 매일 출근하는 것이 무리가 되지 않을까, 출퇴근 과정에서 사고라도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는데 해결할 틈도 없이 취임날이 닥쳐와 불안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25일 담비를 대구 모처에 홀로 쓸쓸히 묻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강아지 역장 취임은 결국 허망하게 끝났다. 이 원장은 "수의사로서 티컵 강아지 연구 등을 병행하며 병원을 힘들게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고까지 일어나 괴롭다"며 "강아지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서둘러 진행시킨 것은 결국 과한 욕심이었다"고 탄식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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