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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극복 아닌 수용하는 것 … 청와대서 공연하고 싶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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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장애인이니까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요라며 항상 최고의 무대를 만들겠다는 꿍따리 유랑단의 단원들. [클론 엔터테인먼트 제공]

‘꿍따리 샤바라’의 인기남성 듀오 클론의 강원래(40)씨. 그가 11일 강원도 삼척 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지난해 결성한 공연단체인 꿍따리유랑단을 이끌고서다. 유랑단의 주인공은 왼팔 하나로 한국 무에타이 챔피언에 오른 최재식, 마술 연습 중 폭발 사고로 오른손을 잃은 한 손 마술사 조성진, 저신장증으로 키가 1m 남짓한 트로트 가수 나용희 등 장애를 가졌지만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다. 강씨도 단장으로 공연에 참여했다. 강씨는 9년 전 교통사고로 가슴 아래 감각을 잃었다. 공연 5시간 전 삼척 문화예술회관에 도착한 강 단장은 가장 먼저 휠체어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찾았다. 리허설은 여느 공연보다 꼼꼼했다.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단원에게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 단원에겐 야광 스티커로 사인을 약속했다.

오후 7시가 가까워지자 200석 규모의 소공연장이 가득 찼다. 주로 가족과 함께 온 관객이 많았고 휠체어를 탄 관객도 여럿 눈에 띄었다. “빱빱띠라라~ 띠라라 나라라라~” 클론의 히트곡 ‘난’이 흘러나왔다. 공연의 시작이다. 사고로 장애인이 된 강원래가 꿍따리유랑단을 만들고 단원이 되기 위해 여러 장기를 가진 장애인들이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공연은 뮤지컬·댄스·연극·영화·만담 등이 섞인 종합선물세트였다. 5살짜리 아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이성희(34)씨는 “울다가 웃다가, 정신없이 봤다. 너무 감동적인 공연이다”며 “특히 어린 청소년들이 보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이 끝난 후 열띤 공연에 채 땀이 식지 않은 강원래 단장을 만났다.

꿍따리 유랑단의 삼척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중인 강원래씨(40). 삼척=임현욱 기자

-꿍따리유랑단은 어떻게 시작했나.
“사고 후 외부활동은 전혀 안 하다 2005년 앨범을 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법무부 요청으로 소년원에서 강의를 하게 됐다. 그런데 애들이 나한테 처음 한 질문이 ‘아저씨 사고 났던 오토바이 얼마짜리예요? 보험금 얼마 받았어요?’였다. 사고 후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질문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오토바이는 1000만원 넘는 건데 사고 후에 폐차했고 보험은 하나도 안 들어서 보험금은 못 받았다. 대신 보상금은 꽤 받았다. 그러니까 너희도 꼭 면허증 따고 헬멧 쓰고 법 지키면서 오토바이 타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니 애들도 나랑 통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렇게 2년 정도 강의하러 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애들한테 훈계를 하고 있더라. 내가 제일 싫어했던 건데 왜 이러고 있지?라는 의문이 들면서 이런 식으로 할 게 아니라 춤과 노래로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공연단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때마침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복권기금으로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다. 그래서 공모에 참가했다. 심사받으러 갔더니 내가 심사위원인 줄 알더라(웃음). 결국 꿍따리유랑단이 선정돼 후원을 받게 됐다. 단원은 원래 알고 지내던 장애인 친구들과 KBS ‘사랑의 가족’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그리고 오디션을 통해 모집했다. 지난해에는 소년원이나 보호관찰소 등을 중심으로 15번 공연했고, 올해는 20번 정도 공연할 예정이다.”

-공연단을 꾸리기가 쉽지 않을 텐데 무엇이 가장 힘든가.
“예산이다. 배우랑 스태프 다해서 30명 정도 된다. 한번 공연하면 밥값, 차비, 숙소비 등 아주 기초적인 것만 해도 100만원이 넘는다. 사실 지금은 거의 무료 봉사하는 수준이다. 또 한 가지는 단원들의 태도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어린 장애인들은 책임감이 없다. 어릴 때부터 따돌림당하고 차별받고, 아니면 항상 배려와 도움만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의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친구들을 설득하고 가르치면서 공연단을 이끌어 가는 게 쉽지 않다.”

-공연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물론 장애인은 힘들다. 물구나무서서 밖에 나간다고 상상해 봐라. 누가 밀지는 않을까, 부딪히지는 않을까, 누가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을까…. 온통 걱정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 더 힘든 게 장애에 대한 편견이다. 나는 이 상태로 그럭저럭 잘 살 수 있는데 선입견을 가지고 소외시키고 따돌리는 것이 더 힘들다. 그런 편견을 깨고 싶다. 장애를 가졌지만 목표를 가지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하고 싶다. ‘괜찮아. 너희도 할 수 있어. 우리도 이렇게 하고 있잖아’라고.

-꼭 하고 싶은 공연이 있나.
“청와대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 거기서 공연하면 방송이나 신문에 크게 보도될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한테 알릴 수 있을 것 같다.”

-장애인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돼가는 거 같아 책임을 느낀다.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됐다는 게 아니다. 혹시라도 좋지 않은 일로 구설에 오르면 사람들이 대한민국 장애인들을 다 그렇게 바라볼 것 같아서 조심하려고 한다. 언젠가부터 외국 영화를 보면 장애인이 얼마나 나오는지 세어 보곤 한다. 네 편 중 한 편에는 단역으로라도 장애인이 나오더라. 이런 게 법적으로 정해졌으면 좋겠다. 60분짜리 영화에는 의무적으로 장애인이 1명은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도 좋다. 그렇게라도 해서 장애인이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고 싶다.”

-클론 시절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제 장애를 극복한 건가.
“질문이 틀렸다. 장애는 ‘극복’ 하는 게 아니다. 극복은 잘못된 표현이다. 나는 장애인이다라는 것을 ‘수용’할 뿐이다. 이젠 그걸 인정하고 살아가는 거다. 지금 나는 너무 행복하다. 클론 때 느꼈던 재미를 요즘 다시 느끼면서 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 즐겁다. 컨셉트만 잡히면 앨범도 낼 것이다. ‘장애인도 돈을 많이 벌 수 있구나. 장애인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구나.’ 앞으로 그런 걸 보여주고 싶다.”



꿍따리 유랑단
강원래 단장을 중심으로 장애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이 모인 공연단. 2008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복권기금의 후원을 받아 소외계층 문화나눔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을 돌며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있다. 주로 보호관찰소·소년원과 농어촌 문화 소외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공연한다. 8월에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 소설도 출간됐다.

삼척= 임현욱 기자 g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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