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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기다림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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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4국
[제1보 (1~19)]
黑.이세돌 9단 白.이창호 9단

출기불의(出其不意). 이세돌 바둑을 표현하는 네 글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출몰하는 이세돌의 병법은 변칙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창호 바둑은 신용도가 극히 높은 정법의 바둑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으며 한탕을 꿈꾸지 않는다.

정법과 변칙. 이 둘은 참 재미있는 관계다. 유연성을 잃고 꽁꽁 굳어버린 정법은 변칙의 밥이고, 수가 얕은 변칙은 정법의 견고한 벽에 금방 숨이 막혀버린다.

동시에 변칙은 화려한 상상력으로 정법의 굳은 머리를 흔들어 깨우고 정법은 확고한 심지로 변칙의 허망함을 증명해낸다. 그런 점에서 이창호와 이세돌은 서로 싸우면서 서로를 자극하고 변화시키는 상생의 관계이기도 하다.

8월 4일 오전 10시. 이세돌이 2대 1로 리드한 가운데 제4국이 시작됐다. 이창호는 "6집반의 덤이라도 선택권이 있다면 흑을 들고 싶다"고 말했다. 흑은 초반의 주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왕위전 도전기는 3국까지 백번필승의 흐름이다. 백의 연승을 풀이하면 선공(先攻)보다 기다림 쪽이 위력을 발휘했다는 뜻도 된다.

흑7의 높은 협공에 백8의 눈목자로 달려 눈에 익은 정석이 펼쳐진다. 그리고 백18. 이창호의 이 한 수가 초반의 흐름을 결정했다. 18 대신 '참고도' 백1로 지키면 흑도 2로 하변을 지켜 평화롭다. 18로 쭉 뻗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고 실리의 요소를 차지한 것으로 축이 유리할 때만 쓸 수 있다. 이세돌9단은 노타임으로 19에 끊었고 이리하여 골치아픈 미완성 정석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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