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레드존 풀지 말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인천 호프집 화재참사가 일어나고 이제 꼭 열이틀이 지났다. 수사가 아직 진행되고 있으나 이 사건은 대체로 업소 주인의 상습적인 불법 영업행위에 업주와 관련공무원들 간의 오랜 유착비리가 얽혀 빚어낸 일종의 관재(官災)로 결론이 날 듯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참사로 희생된 많은 청소년들이 가서는 안될 곳에 출입을 할 수 있도록 방치했던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사고예방에 대한 불감증에 일차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청소년보호를 위해 설정해 놓은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 일명 '레드 존' 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보도(본지 11일자)는 그런 의미에서 범상하게 넘길 얘기가 아니다.

레드 존은 윤락가나 유흥주점.숙박업소 밀집지역 등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청소년 통행금지(제한)구역이다.

범죄 혹은 비행.탈선.사고의 위험이 있는 장소에 청소년들이 접근하거나 출입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제도다.

이런 레드 존이 점차 해제되거나 규제의 정도가 완?풔?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청소년보호 차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을 기준으로 전국에 67곳 있던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 4개월여가 지난 현재 서울 서초구 방배동 카페골목을 비롯해 12개 구역이 전면해제 또는 해제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통행금지구역에서 제한구역으로 완화된 곳도 15곳이나 되지만 금지구역으로 신규지정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처럼 레드 존 완화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청소년보호법 제정으로 레드 존을 지정하고 감독하는 권한이 경찰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가면서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야 하는 단체장들이 지정대상이 될만한 지역의 주민이나 상인들의 반대민원에 밀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기왕 레드 존으로 지정돼 있는 곳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 풀어달라고 아우성이고 새로 지정하려고 하면 벌떼 같이 들고 일어나 이를 막으려 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금지구역을 해제하기는 쉬워도 새로 지정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초 서울 관악구 신림5동 여관밀집지역이 레드 존으로 지정됐다가 인근 상인들의 집단반발로 구청이 해제를 검토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레드 존에서 해제된 구역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청소년보호보다 표를 의식한 선심행정 쪽에 더 관심을 기울인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레드 존이 제대로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레드 존 지정을 지자체의 조례에 맡겨두지 말고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유해지역을 직접 실사, 점검한 뒤 자치단체가 구역지정을 하지 않을 경우 직권지정할 수 있도록 현행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