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내복 입기 캠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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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7월 6일 막을 내린 SBS TV 드라마 '은실이' 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특히 40대 이상 연령층에서 시청률이 높았다. 60년대 궁핍했던 시절을 겪은 그들에겐 '은실이' 는 자신들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출연 배우들의 좋은 연기도 화제를 뿌렸다. 그중에서도 전라도 청년 양정팔은 단연 인기였다. 양정팔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양말과 빨간 내복을 보면서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다.

과거 내복이 귀한 물건으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철 추위를 견디자면 내복은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선물로 내복을 사드리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80년대 들어서 내복은 박대를 받기 시작했다. 집이나 직장에 난방이 잘 돼 있어 겨울에도 별로 춥지 않게 지낼 수 있게 되자 내복은 옷 모양을 망치는 촌스럽고 거추장스런 물건으로 취급됐다.

IMF 관리체제에 들어간 후 '추억의 상품들' 이 각광을 받으면서 내복도 '복권' 이 됐다. 겨울철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집과 직장에서 실내온도를 낮춤에 따라 내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내복 입기를 창피하게 여기던데서 내복 자랑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패션도 화려한 색깔과 요란한 장식 대신 단색(單色)에 심플한 실용성 위주의 디자인으로 변했다.

내복을 입으면 비단 에너지 절약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의사들은 겨울철 건강관리에 필요한 습도 유지를 위해선 실내온도가 지나치게 높아선 안된다고 충고한다.

실내온도가 높아 공기가 건조해지면 코 안의 점막이 말라 체내에 흡입되는 공기 속의 각종 세균과 먼지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함으로써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내온도를 낮추고 내복을 챙겨 입는 것이 건강에 유익하다.

며칠전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대낮에 난데없이 내복 차림의 남녀들이 플래카드와 피켓을 들고 나타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들이 주관한 에너지 절약을 위한 내복 입기 캠페인에 참가한 사람들이 내복 바람으로 진기한 데모를 벌인 것이다.

실제로 내복 입기에 의한 에너지 절약 효과는 상당히 크다. 한 자동차회사 공장에선 지난해 겨울 사무실과 작업장 실내온도를 섭씨 3도씩 낮추고 내복 입기 운동을 벌인 결과 난방비를 32억원이나 절약할 수 있었다.

유류값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겨울이 성큼 다가오자 서민층 가정과 농가에서 연탄 소비가 늘고, 주위에서 내복을 꺼내 입는 사람들이 늘었다. 에너지도 절약되고 건강에도 좋은 내복 입기 운동이 널리 확산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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