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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터뷰] 일본영화학교 교장 사토 다다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일본 최고의 영화전문학교인 일본영화학교 교장이며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사토 다다오(佐藤忠男.69)씨가 5~9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제3회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 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사토씨는 10여년전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 를 일본에 소개하는 등 한국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일본내 대표적 지한파 영화인. 마이니치 출판 저작상을 수상한 4권짜리 '일본영화사' 를 비롯, 1백30권의 영화관련 책을 낸 일본영화의 산증인이다.

이번 영상제에서 사토씨는 '일본 다큐멘터리의 흐름과 최근 경향' 이란 강연 뿐만 아니라 일본 출품작의 해설을 맡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개막작인 '파더레스-아버지 없는 세대' 등 일본 출품작은 죄다 그의 추천을 통해 엄선됐다.

사토씨는 "서울 다큐영상제에 출품된 일본 작품들은 사회성과 역사성을 두루 갖춘 일본 대표작으로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고 말했다.

한국 출품작 중 특히 사토씨의 눈길을 끈 것은 '비디오 저널리즘(VJ) 특집' 에 출품된 '북한의 버려진 아이들, 꽃제비' (안철)였다.

사토씨는 "목숨을 건 흔적이 역력해 그것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며 "마치 패전 이후 일본 상황이 그랬듯이 북한의 식량난이 이 작품을 통해 확실히 증명된 셈"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토씨는 이런 좋은 작품들이 대중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 했다.

"한국처럼 일본도 아직 다큐멘터리의 유통시장이 넓지는 못합니다. 다분히 뉴스에 치중한 TV다큐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요. 다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치매노인의 세계' (출품작)등 훌륭한 작품의 극장상영이 꾸준히 늘고 있어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

사토씨는 한국의 우수한 타큐멘터리가 상업영화처럼 극장에서 상영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전용관'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토씨는 최근 한국영화에 대한 감상 소감도 빼놓지 않았다.

" '아름다운 시절'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보고 젊은 '한국 '감독들의 재능에 놀랐습니다.

주로 인생의 희로애락에 천착했던 이전 한국영화의 독특함 대신 조용하면서도 감각적인 '세계성' 이 돋보였어요. 이런 감각이 한국의 전통가치와 좀 더 조화를 이뤘으면 합니다."

이같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중국.일본영화에 비해 한국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상대적 열세를 보이는 것에 대해 사토씨는 "괘념치 말라" 고 충고한다.

"어차피 영화의 세계는 유행을 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어떤 틀에 한국영화를 고정시킬 필요는 없지요. 한국영화만의 독특한 미학을 추구하다보면 인정받을 때가 오는 법입니다. "

사토씨는 내년 봄 이와나미(岩波)서점에서 '임권택 감독론' 을 출간할 예정이다.

국내 감독으로 일본에서 감독론이 출간되기는 임감독이 처음. 사토씨는 "임감독 작품을 통한 한국 현대사 고찰이 감독론의 핵심이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사토씨는 83년 마닐라국제영화제에서 임감독의 '만다라' 를 보고 "깊디 깊은 슬픔의 아름다움" 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일본영화의 한국 상륙을 보는 사토씨의 시선은 좀 냉정했다. 해외 유수 영화제의 상(賞)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정작 한국에서 보편적 관심을 살만한 작품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것. "3년 전에 나온 영화 중에 '학교' 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장애학생의 눈물겨운 삶을 다룬 영화인데 이런 휴먼드라마가 한국에 빨리 소개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

앞으로 보다 건설적인 한.일 영화 교류를 위해서는 이런 보편적 정서의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사토씨의 지론이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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