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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500년만의 화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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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달 31일 루터교 세계연맹과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우구스부르크에서 '구원론' 에 대한 합의문서에 공동 서명.날인했다.

재작년 홍콩에서 합의된 '이신칭의(以信稱義)교리에 대한 연합 선언문' 에 역사적인 서명이 이뤄진 것이다. 이는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건 1517년 10월 31일로부터 만 4백82년째 되는 날에 진행됐다.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교회가 구원론의 본질적 진리들에 관해 합의를 보았고, 여타 차이점들에 대해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다. 양측은 또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정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가 나온 이래 양측은 1530년대와 1540년대에 걸쳐 화해를 모색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중 레겐스부르크 회담(1541)이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1545~1563년 사이 로마 가톨릭교회의 트렌트 공의회의 교리선언은 루터교와의 결별을 공표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됐다.

양측이 화해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원인?20세기에 들어와 활발히 전개된 에큐메니컬(초교파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 교파들간의 양자간 신학협의회 운동이요, 이러한 가운데 나온 제2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리선언이다.

이런 새로운 기류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측이 '복음' 을 성경의 통일성으로 보게 된 점이다. 이번 최종문서는 1972년에 시작돼 약 30년간 진행돼 온 양자간 신학협의회들의 총결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양측이 공유하고 있는 복음을 재확인하면서 결국 이 복음의 수용(收容)인 구원론에 있어서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 최종 합의문서는 16세기 당시 루터의 구원론과 트렌트 공의회 문서에 나타난 구원론을 비교하면서 이해해야 한다. 최종문서는 16세기에 양측이 주장하던 구원론에서 서로에게 껄끄러웠던 부분들을 각자 양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6세기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측 트렌트 공의회에 따르면 '세례' 를 받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사랑.소망이라는 초자연적인 은사(恩赦)를 주입받음으로써 의롭게 된다. 이는 이미 세례 이전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선행 은총에 대한 반응으로 성취되는 인간의 질적 변화를 전제한다.

또 이처럼 의롭게 된 사람은 세례 이후 계속해서 '성화(聖化)' 의 삶을 살아가는 바, 당시 가톨릭교회는 이 성화를 '구원론' 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루터의 경우는 사람이 복음을 성령 역사로 받아들여(믿음) '의롭다 함' 을 받는데, 이 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전혀 의롭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의(義)를 옷입어 의롭다하심을 받고, 성화(사랑과 소망)로 나간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밖으로부터 오는 의' 를 덧입는다고 하는 복음의 수직적인 차원을 강조했고, 로마 가톨릭교회는 인간이 세례를 전후로 내적 변화를 성취해야 한다는 수평적 차원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최종문서에서 서로가 양보한 것은 무엇인가. 로마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전후해 일어나는 인간의 내적 변화를 전적으로 은총으로 돌리는 동시에, 이 세례에서 받는 의롭게 됨이 결코 그 이전이나 이후의 내적 변화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또 루터교는 수직적인 '이신칭의' 차원에서도 믿는 사람은 이미 성령(사랑)이 부은 바 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內住)하시기 때문에 성화의 추진력을 지녔고, 소망 가운데 있다고 정리했다.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는 복음, 삼위일체 하나님, 정통 기독론, 교회론 등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공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복음' 에 대한 수용과정에 대해 그 본질적 진리들에 있어서 합의를 본 것이다.

대체로 개혁교회(장로교)가 루터교회와 구원론을 공유하기 때문에 개혁교회 역시 로마 가톨릭교회와 매우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다.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교회는 '직제' 문제를 비롯한 나머지 현안들도 계속해서 양자간 신학대화를 통해서 풀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5백년만의 화해는 의미가 크다. 이를 계기로 사분오열된 우리 개신교회들 역시 자체내의 양자간 혹은 다자간 신학적인 대화를 시도해야 마땅하며, 나아가 로마 가톨릭교회 및 동방정통교회와도 에큐메니컬 관계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

IMF 이후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지역감정에 의한 정치.사회적 갈등구조 및 남북의 분단상황에서 우리 한국사회 각 분야 역시 대화를 통한 화해추구에 힘썼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하다.

이형기 장로회 신학대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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