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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 결핍증' 청소년 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초등학교 5학년인 A양(11)은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얼마 전부터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거나 집에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으면 분을 삭이지 못하고 머리카락을 한움큼씩 뽑아냈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B군(5)은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특히 이마는 시퍼런 멍이 하루도 없는 날이 없다. B군은 유치원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마룻바닥에 찧고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는 자해를 한다.

C양(16)은 시험성적이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칼을 들고 자살소동을 벌인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다툼이 있었거나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은 날이면 집에 돌아와 어김없이 책상을 뒤집어 엎고 책을 모두 찢어버린다.

사소한 자극도 참지 못하고 극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참을성 결핍증' 을 앓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스트레스 톨러러빌러티(tolerability)가 낮은 환자' 라고 부르고 있다.

아주대병원 소아정신과 오은영(吳恩瑛.35)교수의 임상자료에 따르면 소아정신과를 찾는 청소년들은 96년 2천2백여명, 97년 3천여명, 98년 4천4백여명으로 매년 30~40% 가량 증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참을성 결핍증 환자는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20% 이상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수철(曺洙哲)교수도 "구체적인 통계연구가 이뤄진 적은 없지만 임상자료에 따르면 참을성이 매우 낮은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 라고 말했다.

참을성 결핍증은 자녀가 원하는 대로 지나치게 많은 것을 들어주는 부모의 양육 태도가 원인이며, 맞벌이 부모와 형제 없는 아이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있다는 게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의 진단이다.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할 수 있었던 아이는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가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아진다. 이때 그동안 참을성을 훈련받지 못한 아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게 된다.

형제 없이 혼자 귀하게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가 심하며, PC게임 등 혼자 즐기는 놀이가 증가한 것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또래 친구나 타인과 어울리는 사회화 과정이 부족해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吳교수는 "부모가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줘야 하며, 무조건 귀하게만 키울 것이 아니라 좌절이나 갈등도 겪게 해 참을성을 길러 줘야 한다" 고 말했다.

이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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