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종찬부총재 '국정원 문건반출' 파문] 국정원 보안 문제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민회의 이종찬(李鍾贊)부총재가 1일 실토한 '국가정보원 문건 반출' 행위가 파문을 낳고 있다. 여야간 언론장악 문건 공방의 새로운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李부총재는 기자들과 만나 "(지난 5월 25일 국정원장 퇴임 때)관심갖고 보던 문건을 가지고 나왔다" 고 시인했다. 그는 "북한.통일문제는 내가 전문가라고 생각해 참고하기 위해(문건들을)가지고 나왔다" 고 덧붙였다.

그의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적이다. 우선 전직 국가 최고 정보기관장으로서 기본 수칙을 위반했다는 논란이다. 둘째 국정원의 보안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는 점.

'보안을 생명으로 여긴다' 는 국정원 직원들은 일반 공무원들과 달리 퇴임후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국정원직원법 17조에는 '재직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지득(知得)한 비밀을 누설해선 안된다' 고 돼 있다. 위반하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의 중형에 처한다.

李부총재의 문건 반출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측은 "보안업무 규정상 일반 문건은 담당 부서장의 승인하에 반출할 수 있으며, 비밀문건은 원장 승인하에 가지고 나갈 수 있다" 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설명도 충분한 면죄부는 되지 못한다. 보안업무규정 25조에는 '비밀은 보관하고 있는 시설 밖으로 지출해선 안된다' 면서 '다만 공무상 지출이 필요한 때 소속기관장의 승인을 얻어 지출할 수 있다' 고 돼 있다.

李부총재의 행태가 공무상 지출도 아닌데다, 그의 후임인 천용택(千容宅)국정원장이 승인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문제의 심각성은 또 있다. 李부총재는 국정원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문건들을 매우 허술하게 관리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퇴임 직후 얻은 사무실중 창고 겸 서고로 쓰는 방에 이 문건들을 보관해 왔고, 이번에 언론관련 문건을 빼낸 이도준(李到俊)평화방송 기자는 이 방을 쉽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실제 이 문건들 중 10건 정도가 李기자를 통해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에게 넘겨진 것으로 알려졌다.국가기밀 문서가 이미 외부에 누설된 셈이다.

뒤늦게 정권 핵심부는 철저한 문서 보안에 나섰다. 김종필(金鍾泌)총리는 1일 간부회의에서 문서 보안 강화를 특별 지시했다.

김중권(金重權)청와대 비서실장은 월례 직원조회에서 "무심히 취급한 서류 한장과 디스켓 하나가 국정을 흔들고 국민을 불안케하는 대혼란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정부내에서는 퇴직 정보기관 간부들에 대한 사후관리의 시급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 관계자는 "외국은 퇴직 정보기관장은 출장 때도 현 정보기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며 "우리의 경우 퇴직 후 특정 정당에 아무런 제약 없이 소속돼 정치활동을 하는 건 심각한 문제" 라고 지적했다.

박승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