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법규 갈수록 느슨…건축물 소방점검 횟수 절반으로 감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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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소방관리시스템이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

지난 6월 30일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화재 등 대형 참사가 잇따르고 있지만 소방 관련 법규가 오히려 크게 완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국회에서 소방법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이미 소방법 시행령과 규칙을 대대적으로 손질했다.

이에 따라 소방점검 횟수▶화재 예방교육▶방화관리책임자 선.해임 등 주요 소방관리 규정이 크게 풀려 9월 중순부터 시행 중이다.

우선 정부는 1년에 한차례 해야 했던 일반 건축물(2급)의 소방점검 횟수를 2년에 한차례로 줄였다.

1년에 두차례 해야 했던 특수 관리대상(1급.연면적 1만㎡ 이상, 11층 이상 고층 건물 등)도 1년에 한차례로 줄이는 등 전반적으로 소방점검 횟수를 절반으로 감축했다.

소방서장이 필요할 때 강제로 시행할 수 있던 화재 예방교육 규정 역시 '시설주로 부터 협의가 들어와야 교육할 수 있다' 는 임의규정으로 바꿨다.

따라서 소방관이 화재훈련 중 강제로 시민들을 집에서 끌어낼 수 있는 권한까지 가진 선진국과 달리, 이번 인천 사고처럼 대형 참사가 일어나도 주점 업주들을 상대로 소방교육조차 시킬 수 없는 실정이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책임을 지게 되는 소방관리 책임자의 선임이나 해임 관련 규정도 크게 완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종전에는 관할 소방서장이 방화관리책임자를 선임.해임할 수 있었으나 선임만 할 수 있게 바뀌었으며, 위험물안전관리자를 선임.해임할 수 있었던 소방서장의 권한은 없어졌다.

일본.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건물 허가.건축.관리 등 전분야에서 종합적인 소방관리가 이뤄지고 반면 한국은 그나마 있는 소방규제마저 풀고 있다. 소방관리 규정이 이처럼 후퇴한 것은 지난해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규제개혁 조치 때문이다.

행정자치부 소방행정 관계자는 "무조건 50%의 행정규제를 줄이라는 방침에 따라 소방규제가 많이 폐지됐다" 며 "심의과정에서 '소방법 관련 규정이 너무 무리하게 풀리는 게 아니냐' 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행정개혁이라는 큰 흐름에 휩쓸리고 말았다" 고 아쉬워했다.

문민정부 시절 대구지하철공사 폭발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아현동 가스폭발 화재사고 등이 잇따르자 총리가 직접 재난관리를 담당하고, 행정자치부 민방위본부에 재난관리국을 신설하는 등 기본적인 재난관리 통합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공직사회 구조조정 차원에서 정부조직이 축소되면서 총리의 평시 국가재난관리 업무를 없애고 행자부 재난관리국도 폐지했다.

이와 함께 80년대 초까지만도 엄격하게 규정돼 있는 건축물 내장재 관련 규정이나, 소방시설 점검 담당자 규정도 10여차례의 소방법 개정 과정에서 거의 사라졌다.

생명문화운동 이규학(李圭學.방재전문가)의장은 "최근 재난관리에 정부의 의지 부족과 규제개혁 논리에 밀려 시민의 인명을 다루는 소방법 등의 관련 법규가 갈수록 허술해지고 있다" 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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