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왕따' 당하며 객관적 보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왕따' 를 당한다는 말을 빼곤 요즘의 중앙일보를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홍석현(洪錫炫)중앙일보 사장의 구속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부와의 갈등이 지난 주에는 중앙일보의 주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면이 전환됐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일보는 여전히 주변으로부터 이렇다 할 격려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폭로한 문건은 분명 洪사장의 구속이 사전에 만들어진 각본에 따라 진행된 표적수사의 결과일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왜 계속 왕따를 당하고 있는가. 다른 신문들의 논점은 '언론장악을 위한 표적수사' 라는 중앙일보의 주장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대부분의 언론은 '관.언 유착' 을 문제삼고 있다. 어떻게 '정부를 감시해야 할 기자가 언론장악을 위한 아이디어를 권력에 제공할 수 있느냐' , 그리고 그러한 문건의 존재를 발견한 기자는 왜 '돈을 받고 그것을 야당에 팔았는가' 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 차원의 도덕성과 자질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이번 사건의 구조적 본질을 호도해 일종의 '해프닝' 으로 사건을 마무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 중앙일보 사태의 핵심은 언론사 사주를 구속한 일이 정부의 '기획' 에 따른 연출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다.

이런 기준에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은 두 건의 논설기사를 지난 주말 중앙일보 아닌 다른 신문지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름 아닌 지난달 30일자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 과 동아일보의 '사설' 이다. 두 기사 모두 이번 사태의 배후에 정부의 '언론장악' 의도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논지 위에서 이 문제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의외로 빨리 수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매우 역동적인 것이었다.

정형근 의원의 폭로는 이강래(李康來)전 정무수석을 이 사건의 주인공으로 부각시켰으나, 곧 국민회의는 중앙일보의 자작극이라 반격했고, 이는 다시 이종찬(李鍾贊)국민회의 부총재의 역할이 드러나면서 역전됐다.

이런 과정에서 모든 일간지는 결과적으로 오보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관련 시민단체들의 논평 또한 상황변화에 따라 춤을 추는 형국이었다.

이런 기준에서 지난 주는 분명 중앙일보의 지면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주였다. 사건의 한 쪽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유지한 보도를 저버리지 않았고, 동시에 사건의 의미와 배후, 그리고 앞으로의 파장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를 폭넓게 제공했기 때문이다.

객관성을 유지한 보도의 예로는 26일 정형근 의원과 이강래 전 수석을 각각 인터뷰한 기사와 27, 28, 29일 여야의 입장을 정리하고 문건의 유출배경을 설명한 종합면 등이다.

심층적이고 입체적인 기사의 예는 '언론장악 시나리오 의혹' 을 분석한 26일의 종합면, 닉슨의 경우와 대비시킨 27일 김영희 대기자의 칼럼, 29일자 '언론장악문건 미스터리' 를 설명한 종합면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지난 주 사설은 계속해 이번 사건의 전개와 관련된 중요 쟁점을 당사자의 입장에서라기 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해명을 요구하고 있어 독자의 공감을 끌어냈다고 보인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26일 '정형근 의원 대정부 질문요지' 와 28일 '문일현씨 누구인가' 의 두 종합면 기사가 실명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중앙일보가 지난 주와 같이 의연한 보도태도를 계속 유지해 '왕따' 에서 '중앙' 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유석춘 교수(연세대.사회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