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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화재참사] '독가스실' 변한 호프집 10대들 숨막힌 23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30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55명의 젊은 목숨을 '영원' 으로 보낸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생지옥과도 같았다.

불길이 잡힌 인천시 중구 인현동 4층 상가 2층에 있는 '라이브Ⅱ 호프집' 내부는 시체와 타다 남은 집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출입구 반대쪽인 주방에 유독성 연기를 피해 몰려 있던 수십명의 남녀 학생들이 뒤엉킨 채 숨져 있었다. 또 50평 규모의 홀 안 곳곳에도 숨지거나 신음 중인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진화 때 쓰인 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에는 운동화.가방.찢어진 옷가지.휴대폰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일부 사망자들은 셔츠나 점퍼로 얼굴을 가린 채 발견됐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다 끝내 죽음을 맞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줬다.

진화 직후 안으로 들어간 소방관들은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밖으로 들어냈다. 유독가스 때문에 대부분 실신 상태였다.

화재진압을 지휘한 인천 중부소방서 김명환(金明煥.57)서장은 "연기를 헤치고 호프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남녀 고교생으로 보이는 10대들이 통로에 3~4겹으로 포개진 채 숨져 있거나 신음하고 있었다" 고 말했다.

호프집 유리창문에 붙어있는 나무 합판은 불길로 검게 그을려 있었지만 화재 당시 학생들이 뜯어낸 흔적은 없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보니 학생들은 유리창문에 붙어 있는 합판을 뜯어내려는 생각조차 못한 채 가스에 질식돼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호프집 계단 쪽에도 학생들의 가방이나 문구용품이 널려 있었다. 화재 직전 호프집에 자리가 나기를 기대하며 출입구 안쪽에 대기하고 있던 청소년들이 놓고 간 물건들이었다.

불이 난 4층 상가 건물은 외벽이 연기로 검게 그을렸고 2층과 3층 창문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었으나 내부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현장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소실 피해가 적었다.

그러나 처음 발화된 지하층과 연결된 1, 2층 통로의 천장과 벽면이 뜨거운 불 기운에 녹아내려 내부수리 중인 지하 노래방에서 치솟은 불길과 함께 내뿜은 유독가스가 많은 인명피해를 낸 것임을 쉽사리 추측하게 했다.

불이 날 당시 생일을 맞은 친구 등 9명과 함께 호프집 안에 있다 구조된 李모(16.D고1년)군은 "검은 연기가 천장 쪽으로 밀려드는 것을 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순간 전깃불이 꺼졌고 연기를 피하려고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정신을 잃었다" 고 말했다.

"손님들은 하나같이 10대였고 이중에는 이제 갓 어린이 티를 벗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어요. "

호프집 바닥에서 학생들이 생일파티 도중 흘리고 간 장미 한송이와 작은 촛대를 집어든 한 소방관은 "씨랜드 화재 사고 이후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하며 말을 흐렸다.

배익준.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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