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기술자 이근안 자수] 정가에도 파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근안(李根安)전 경감의 '전격 자수' 가 언론관련 문건 파동으로 격앙돼 있는 여야에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여당측은 '고문기술자' 로 악명높았던 李전경감이 입을 열면 안기부 대공수사전문가 출신의 정형근(鄭亨根)의원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모습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李전경감의 돌연한 자수 자체가 언론공작 사태를 물타기하려는 여권의 확연한 '공작정치' 라며 역공(逆攻)을 가하고 있다.

국민회의 김옥두(金玉斗)총재비서실장은 29일 "李전경감의 진술을 주의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며 "안기부에서 대공.시국사건 수사 전반을 지휘했던 鄭의원의 공작정치 전력이 밝혀질 수 있다" 고 말했다.

또다른 고위당직자도 "이근안의 등장으로 가장 곤혹스러운 인사는 鄭의원일 것" 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정작 지난 85년 李전경감으로부터 모진 고문을 받았던 국민회의 김근태(金槿泰)의원은 "개연성은 있을지 모르지만 나 자신은 그런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고 밝혔다.

대공수사국 수사2단장(85년), 안기부 대공수사국장(88년)등을 지낸 鄭의원은 李전경감이 맹위를 떨치던 시점에 대공수사의 핵심역할을 맡았던 것은 사실.

반면 한나라당측은 11년간 가족과 함께 멀쩡하게 도피생활을 해온 李전경감의 자수는 여권이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국면전환용 카드' 라는 게 확고한 시각.

이경재(李敬在)의원은 "언론장악 음모의 파장을 이근안으로 덮으려 한 것" 이라며 "지난 6월 옷 로비 사건 때는 신창원이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어떻게 이근안이 등장하는지 알쏭달쏭하다" 고 했다.

김정숙(金貞淑)의원은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도 "언론말살 공작을 덮기 위해 이근안을 자수시킨 것" 이라고 톤을 높여 당의 시각을 대변했다.

한 당직자는 "여권이 궁지에 몰린 시점에 이근안이 나타났다" 며 "그의 도피기간 중 생활비를 누가 대줬는지, 공안당국이 그의 도피를 지원 내지 방조하지 않았는지, 공작에 의한 자수가 아닌지 당 차원에서 집중추궁할 것" 이라고 밝혔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