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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뚝딱뚝딱 … 어, 교보에 남쪽 창이 생겼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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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호 04면

서울 광화문 일대 건물은 1990년대 초반까지 옥상을 가림막으로 봉쇄했다. 또 북쪽으로 창문을 낼 수 없었다.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들어선 청와대의 경호·보안 조치 탓이다. 종로1가 1번지를 차지한 교보생명빌딩 역시 세종로 1번지의 위세에 눌려 예외가 아니었다. 80년부터 입주한 지하 4층, 지상 23층 규모의 교보빌딩은 요즘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답답하게 막아둔 남북면의 벽부터 뜯어냈다. 옥상과 그린하우스 등도 개조할 예정이다.

조용한 도심 빌딩 개조, 서울 리모델링 바람

그런데 이곳을 자주 오가는 사람조차 공사가 진행 중인 것을 잘 모른다. 왜 그럴까. 공사를 맡은 대림산업 직원들이 금요일에 쉬는 것에 힌트가 있다. 주말과 공휴일, 그리고 사무실 근무자가 퇴근하는 야간에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림산업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특허를 여러 개 냈다고 자랑한다. 발주자인 교보 측이 공사 모습을 가급적 드러내지 말고, 입주자의 불편을 최소화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 발명의 어머니였다. 발주자를 만족시키려고 온 직원이 머리를 짜내다 보니 저절로 신공법이 개발되더라는 것이다.

신공법 발명의 어머니
대표적 발명품은 옥상에 다리를 붙인 타워크레인이다. 건물 속의 철골조 빔을 찾아 크레인 다리를 부착한 것으로 6t을 들어올릴 수 있다. 엘리베이터로 운반해 조립한 작은 크레인으로 훨씬 큰 이 크레인을 들어 올려 설치했다. 고개를 들어 건물 꼭대기를 꼼꼼히 살펴야 공사장의 상징인 타워크레인을 발견할 수 있다. 또 남북 벽체를 뜯어내기 위해 ‘워크 플랫폼(work platform)’을 설치했다. 벽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긴 작업대다. 이 워크 플랫폼을 이용해 밤중에 5.6t 단위로 벽체를 잘라낸 뒤, 이를 크레인으로 바닥에 내렸다. 벽체를 뜯어낸 자국은 벽과 비슷한 빛깔의 칸막이를 설치해 표시가 나지 않도록 했다. 입주자나 일반인은 밤새 건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2월 말까지 남쪽과 북쪽의 벽을 모두 유리창으로 바꿨다. 단층 유리로 된 동서 측 창문도 복층 유리로 교체했다.

일부 층은 비우되 나머지 층은 사무실 공간으로 그대로 쓰는 이른바 ‘재실(在室) 리모델링’ 방식이 사용됐다. 건물 전체에 휘장막(외부 비계)을 두르고 모든 사무실을 비운 뒤 공사하는 ‘전면 비(非)재실 리모델링 방식’을 쓰지 않은 것이다. 제일 먼저 꼭대기 층부터 4개 층을 비운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했다. 4개 층 가운데 가장 아래층은 ‘완충 지대(버퍼 존)’다.

그 아래층 사무실에 전달되는 소음·진동을 차단한다. 윤성도 현장소장은 “리모델링 공사를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라며 “4500여 명이 근무하고 밤 11시까지 수만 명이 드나드는 대형서점이 붙어 있으며, 철야 근무가 잦은 외국기관까지 입주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무실을 옮기는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 한 외국대사관의 경우 새로 입주할 층의 사무실을 꾸미는 데만 50억원 넘게 들었다는 후문이다. 발암물질인 석면을 없애는 과정도 복잡했다. 입주 외국대사관 측이 국제기준을 적용해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국제공인검증업체인 뷰로베리타스의 공정기준대로 공기질을 측정하면서 석면을 안전하게 제거해야 했다. 대사들을 모아놓고 공사 계획과 안전성을 설명하고, 영문 홈페이지를 만들어 작업 과정을 일일이 알렸다.

임대료 수입 크게 늘어
재실 리모델링이지만 리모델링의 범위는 뼈대만 빼고 전부일 정도로 무척 넓다. 화장실 개조, 공조 및 냉난방시설 교체, 조명기구의 교체는 기본이다. 전면 로비도 확장하고 이 빌딩의 자랑인 로비 안의 대나무밭(그린하우스) 외관도 바꿀 계획이다. 지하 3층에서 지상 2층까지 셔틀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교보는 왜 이렇게 복잡한 재실 리모델링을 선택했을까. 알투코리아부동산투자자문 관계자는 “리모델링 기간에 얻는 임대 수입으로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보빌딩의 3.3㎡(1평)당 임대료는 2분기 기준 10만5000원. 건물 전체를 임대할 경우 연간 400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3년간 임대료 수입은 같은 기간 공사비 1285억원과 거의 맞아떨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사무실을 비우고 리모델링을 하면 입주자를 다시 채우기도 쉽지 않다. 실제 교보빌딩과 달리 비재실 리모델링을 한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빌딩(옛 대우센터빌딩)은 다음 달 16일 입주를 앞두고 예상을 웃도는 공실로 고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빌딩 임대료가 3.3㎡당 11만~14만원대로 높다. 익명을 요구한 컨설팅업체 관계자는 “주변 서울시티타워 등의 임대료 8만원대보다 훨씬 높고, 중심업무지구(CBD) 전체와 비교해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빌딩 인수 가격이 9600억원이나 됐고, 9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리모델링 비용이 추가로 든데다 리모델링 기간에 임대료 수입을 포기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목표 수익률을 맞추려면 임대료를 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서울스퀘어빌딩 관계자는 “리모델링으로 사무실 품질이 몰라보게 달라졌기 때문에 그만큼 임대료를 더 받는 것”이라며 “현재 여러 곳과 임대차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빌딩은 로비, 주차장 진입 부위, 엘리베이터, 공조시스템 등을 몽땅 바꿨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는 음식점 등 상가, 3층은 입주자 공용 공간, 4~23층은 임대사무실을 각각 배치했다. 서울스퀘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빌딩 관리 소프트웨어를 개선해 주차 대행, 경호, 도·감청 조사, 자동차 관리 등의 부대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시장은 아직 공동주택 중심
서울스퀘어빌딩은 법적인 의미에선 리모델링을 한 게 아니다. 현행 건축법에 정의된 리모델링은 ‘건축물의 노후화를 억제하거나 기능 향상 등을 위하여 대수선하거나 일부 증축하는 행위’다. 여기서 대수선은 건축물의 기둥·보·내력벽·주계단 등의 구조나 외부 형태를 수선·변경하거나 증설하는 것’이다. 이 빌딩을 인수한 미국의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는 애초 대수선에 해당하는 리모델링을 계획했다. 건물 골격은 그대로 둔 채 외관을 알루미늄 소재로 바꾸고 내부 구조를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구청이 허가하지 않았다. 이 빌딩 일대가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에 속해 있어 대수선을 하려면 도로·공원 같은 기반시설을 조성하기 위한 땅을 사들여 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골조만 놔두고 거의 뜯어고치는 내부 수리도 일반적으로는 리모델링에 해당한다.

비단 교보빌딩과 서울스퀘어뿐 아니라 최근 서울 도심 속 대형 빌딩의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대표적으로 명동을 중심으로 하나명동허브빌딩, 극장체인인 CGV, 눈스퀘어(옛 아바타몰), M플라자 등이 있다. 삼성 본관도 리모델링을 끝내 삼성 금융계열사의 입주가 시작됐다.리모델링은 신축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고 공사기간이 짧다는 게 장점이다. 리모델링 후의 수익성도 괜찮다는 평가다. 사무실 임대료를 적게는 10%에서 20% 정도 높여 받을 수 있고, 더 고급스럽고 다양한 상업 시설을 유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건물의 가치도 올라간다. 교보빌딩의 경우 리모델링 후 가치가 1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이다.

리모델링 수요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70~80년대에 일반용 빌딩이 많이 지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에너지 절약, 정보화와 쾌적공간 수요, 경제적 타당성, 그리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 등이 리모델링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서울시는 57만여 채의 일반건축물 가운데 79%(45만여 채)를 리모델링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 중 15년 이상 된 6층 이상 일반건축물은 5000채에 달한다. 국토해양부는 최근 건축법 시행령을 바꿔 리모델링 가능 연한을 20년 이상 노후 건물에서 15년 이상 노후 건물로 규제를 완화했다. 이와 함께 시행규칙을 이르면 연내 개정해 증축 가능 면적을 연면적의 10%에서 30%까지 늘려줄 방침이다.

분란 없게 계약 단계서 꼼꼼히
하지만 빌딩 리모델링이 예상만큼 활성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김수완 ㈜리노메이트 대표는 “강북 도심의 대형빌딩이나 70년대 주차장 없이 지은 빌딩은 대부분 철거 후 다시 짓는 것보다 리모델링이 유리할 것”이라며 “그러나 많은 건물주가 아직은 리모델링의 경제성을 확신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협회가 있기는 하나 공동주택 리모델링에 주로 관심을 보이고 있고, 건물주들도 부분적인 개조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윤 소장은 “건물주나 시공사나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이견 충돌을 여러 차례 겪고 나면 ‘다시는 리모델링 안 한다’는 말이 나온다”며 “논쟁을 부를 수 있는 공사의 범위 등을 계약서류상에 명확히 하고, 건물주도 전문업체를 믿고 맡기는 것이 시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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