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뉴라운드를 보는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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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세계무역기구(WTO)는 오는 11월 말 미국 시애틀에서 제3차 각료회의를 열어 뉴라운드의 무역협상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번에 열리게 될 협상은 우루과이라운드에 이어 아홉번째로 열리는 다자(多者)간 협상인 동시에 WTO체제하에서 처음 개최되는 협상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뉴라운드 협상은 그 결과가 21세기 세계무역질서의 기본 틀을 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최근 각료회의 선언문 초안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협상 참가국들은 이번 협상에서 다뤄지게 될 의제에 대해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협상의제로 확정된 분야는 농업과 서비스밖에 없으며 다른 의제들에 대해서는 회원국들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공산품의 관세인하, 반덤핑 및 분쟁해결절차 검토, 최빈(最貧)개도국 지원, 정부조달, 국제투자, 경쟁정책, 환경, 전자상거래, 정보기술상품의 관세철폐 등이 협상의제로 채택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이번 협상과 관련해 또 하나의 관심사항으로 대두되는 것은 협상타결방식이다. 미국은 농산물.서비스 등을 중심으로 분야별 조기타결을 주장하고 있는 한편 유럽연합.일본.우리나라 등은 회원국들의 관심사항을 균형있게 반영시킬 수 있는 일괄타결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물론 일괄타결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와 같이 농산물과 같은 어느 한 분야의 협상이 다른 모든 분야의 협상을 지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뉴라운드 협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는 과연 어떠한가. 부존자원이 부족할 뿐 아니라 특정 경제블록에도 속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에는 무엇보다도 무역을 통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중요하다. 또한 협상력이 월등히 큰 국가들과의 쌍무협상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함께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상은 오히려 우리에게 매우 유리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배경에도 불구하고 최근 뉴라운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것 같다. 물론 농산물시장 추가개방에 대한 우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서비스시장의 개방, 공산품의 관세인하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경제위기를 겪은 우리 국민의 정서가 한몫을 한 결과라고 이해된다. 여기서 우리는 분야별로 우리 국익에 무엇이 유리한 것인지를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

먼저 공산품 관세인하의 득실을 살펴보자. 우리 공산품에 대한 실행관세율이 양허관세율보다 낮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공산품의 관세인하는 우리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을 뿐더러 무역상대국들의 관세인하를 촉구하여 우리 수출시장의 확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섬유나 신발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선진국들의 불공평한 관세제도를 공략할 수도 있다. 또한 이번 협상에서 반덤핑조치 등 자의성이 많은 선진국들의 무역제한조치에 대해 쐐기를 박음으로써 우리 기업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IMF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외국인 직접투자와 금융서비스 분야에 대한 대폭적인 대외개방과 국내규제개혁을 실시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협상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또 외국으로부터 추가적인 경쟁이 도입되지 않고서는 우리 대기업들의 구조조정과 국제경쟁력 확보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없다는 사실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이렇듯 새로 출범할 WTO 다자간 무역협상이 우리에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해야할 일은 협상의제별 손익계산서를 작성하고 필요하다면 입장을 같이하는 국가들과 연합을 시도하는 등 우리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협상전략을 차분히 구상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가져다주었다. 무엇보다도 협상의 실제 내용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이 협상결과를 수용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통상교섭본부는 이 점을 명심해 업계와 전문가그룹, 그리고 시민단체들에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전해주도록 해야 한다. 또한 협상의제가 다양한 만큼 타 부처와의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박태호<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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