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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김영원 초대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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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새끼줄과 색색의 띠가 동여매진 커다란 나무 원기둥. 그 주변을 맴돌면서 신내림을 받은 무당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신들린 듯 춤을 춘다.

조각가 김영원(52)씨. 94년 세계 3대 비엔날레의 하나로 꼽히는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해 우주와 인간이 하나 되는 만물합일(萬物合一)의 정신을 '선(禪)퍼포먼스' 로 보여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작가다.

극히 사실적인 인체 조각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순환의 원리로 설명해온 그가 18일부터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다.

개막 당일 오후5시에는 다시 한번 화제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는 화랑가에서 소위 '잘 나가는' 조각가는 아니다. 그의 작품이 빛깔 곱고 질감 좋은 대리석으로 다듬은 이상적인 여인상이나 현대적 세련미로 단장한 미니멀 조각이 아니라는 얘기다.

고스란히 드러난 벌거벗은 인체는 단련된 근육의 신체미를 강조하기 보다는 기타의 현처럼 드러난 뼈마디가 왠지 눈을 편치 않게 한다.

꾹꾹 바늘로 찍듯 적나라하게 묘사한 인간군상은 현대 산업사회의 빡빡하고 건조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본질을 밑바닥부터 뒤집어 드러내 보이는 듯한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그의 작품이 지닌 색다른 호소력은 모종의 압도감에서 온다. 작업실을 방문한 어떤 이는 "마치 큰 산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법당에 들어섰을 때처럼 숙연함을 느낀다" 는 비유를 한다.

이는 거의 사람 크기만한 큼직한 덩치에서 연유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이 기반하고 있는 선(禪)사상에서도 우러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선에 심취, 매일 아침 선방을 찾아 참선에 잠기는 그는 결국 한 줌 먼지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사, 여기에는 생(生)도 멸(滅)도 시작도 끝도 따로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어딘지 모르지만 뚜벅뚜벅 끊임없이 발길을 옮기는 사람들의 행렬은 이러한 윤회사상을 암시한다.

크기가 다른 인체 조각들이 동작의 연속성을 잘 나타내준다. 엎드려 절하는 인체상 20개가 결합된 '절하기' 는 깨달으면 간단하지만 깨닫기 전에는 도무지 묘하고 복잡하고 서글프기만 한 인생의 숨겨진 뜻을 갈구하는 인간을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해 대형사진으로 뽑아놓은 '걸어오는 남자(여자)' 시리즈는 수십 개의 인체가 다양한 배율로 겹쳐지면서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하는, 역시 '합일' 의 경지를 웅변한다.

70년대 후반부터 현실 비판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했던 그는 우리 근대 조각의 선구로 불리는 김복진과 요절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뒤를 잇는 리얼리즘 조각 계보의 적자로 평가받고 있다.

홍익대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중앙미술대전에서 특선을 두 차례 했으며 현재 홍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1월14일까지. 02-720-5114.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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