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평야 대풍 기대 물거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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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농사 잘 지어 대풍(大豊)을 기대했는데 가을비 때문에 폭삭 망했어요. "

14일 오후 2시 충남 당진군 합덕읍 신흥리 들판에서 신한철(申漢澈.36)씨는 논바닥에 쓰러진 벼를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달 20일쯤부터 최근까지 10여 차례 내린 비로 申씨의 논 2만5천여 평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만7천 평의 벼가 쓰러졌다. 쓰러진 벼이삭 상당수에서 이미 싹이 터 논바닥에서 멍든 가슴처럼 파랗게 새순이 돋고 있다. 싹이 나지 않은 이삭도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다.

申씨는 "해마다 80kg 들이 벼 5백 가마 이상을 수확, 한해 8천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데 올해는 잘해야 2백 가마도 못 건질 것 같다" 고 말했다.

충남 제일의 곡창지대인 당진군 합덕읍 일대 농민들이 비로 인해 벼가 쓰려졌지만 수습할 길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이 지역은 지난 추석 연휴 때부터 평균 3일 걸러 한 번씩 비가 왔다.

이 비로 합덕읍 신흥리 일대 논 1백40만평(4백60여ha)가운데 절반인 70여만 평(2백여ha)의 벼가 쓰러졌다.

그러나 대다수가 노약자인 농민들은 일손이 달리는 바람에 벼를 제때 일으켜 세우지 못했다.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뒤늦게 일으켜 세운 벼에서 수확된 쌀마저 미질(米質)이 떨어져 수매 때 제 값을 받기는 이미 글렀다.

자신이 경작하는 논(1만7천여 평)의 벼가 모조리 쓰러진 이곳 농민 고영산(高永山.57)씨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이번처럼 가을에 비 피해를 크게 본 적이 없다" 며 "일손이 달려 벼를 일으켜 세울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고 말했다.

게다가 농민들은 군청 등 행정당국에 호소를 해보았지만 피해현황 조사조차 하지 않고 지원대책도 전혀 마련하지 않는다고 호소하고 있다.

실제 당진군이 파악한 쓰러진 벼 면적은 합덕읍 지역이 고작 24ha에 불과해 농민들 주장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당진군 관계자는 "쓰러진 벼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대책은 정부에서도 전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군청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다" 며 "이런 마당에 피해 면적을 조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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