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EU FTA, 보호무역 대비한 발판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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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어제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에 가서명했다. 양측이 내년 1~2월께 본 서명을 하게 되면, 내년 7월께 FTA가 정식 발효될 전망이다. 양측이 공개한 협정문에 따르면 향후 3년 내에 공산품 99%에 관세를 없애고 5년 안에 모든 공산품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지난 2년5개월간 힘들었던 협상이 결실을 본 것이다. 인구 5억 명의 EU는 역내 총생산(GDP) 규모가 18조3300억 달러로 세계 1위 경제권이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의 절반, 우리 무역흑자의 38%를 EU가 각각 차지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한국과 EU가 자유무역에 손을 맞잡은 것은 시기적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해부터 세계 교역 규모는 크게 줄어들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도 세계 교역이 전년 대비 10%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인지 세계 곳곳에 불온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지난 1년간 나라마다 환율 변동이 들쭉날쭉해지면서 수출 감소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습이다. 올해 상반기 중국은 수출 총액이 22% 감소했지만 세계 최대의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독일의 수출은 34%, 일본은 37%, 미국은 24%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중국의 위안화에 대한 평가절상 압력이 가중되고 통상마찰도 거칠어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중국을 상대로 반덤핑 관세 등 불공정 무역 관련 조치는 79건, 100억3500만 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건수는 16.2%, 금액은 121.2%나 늘어난 것으로, 세계 통상마찰의 절반이 중국에 기인하고 있다.

수출의존도만 따지면 한국은 중국보다 더하다. 전체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6%나 된다. 한국만큼 자유무역 확산이 절실한 나라도 없다. 이명박 정부가 줄곧 보호무역 저지를 위한 ‘스탠드 스틸(Stand Still·새로운 무역장벽 금지)’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수출의존적 체질을 바꾸려면 내수 확충도 중요하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투자를 늘리고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 방향은 대내적으로 환율 변동에 흔들리지 않도록 수출경쟁력을 키우면서 대외적으론 자유무역 확산을 제도화시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한·EU FTA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온 것을 다시 한번 환영한다. 우리 국회와 EU 의회의 비준이 무리 없이 이뤄지도록 양측 협상단은 끝까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어느 때보다 모범적으로 진행돼온 한·EU FTA는 통상협상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런 성공 사례가 자동차 관세 문제로 2년 넘게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FTA 비준에 새로운 자극이 되고, 최근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한·중·일 FTA 추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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