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시시각각

더블 딥 논란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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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한동안 출구전략을 두고 말들이 무성하더니만 요즘은 난데없이 더블 딥(Double Dip)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더블 딥이란 경기가 침체에 빠진 뒤 반짝 살아나는 듯싶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경기의 진행 모습이 영어 알파벳의 W와 비슷하다고 해서 ‘W자형 경기침체’라고도 한다.

지난 여름 세계경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금융위기를 잘 버텨내는 것을 보고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물론 많은 경제학자들마저 입을 모아 경기가 조기에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고들 했다. 지난해 위기가 처음 터졌을 때 100년 만에 최악의 경기침체가 닥칠 거라며 호들갑을 떨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그러다가 지난달부터 더블 딥에 대한 우려가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대공황 이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실물경제의 지표가 악화되면서부터다.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와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더블 딥의 가능성을 경고했고, 금융권의 분석가들도 다투어 W자형 장기침체를 점쳤다. 대세가 한번 비관론으로 기울자 V자형 조기회복을 주장하던 목소리는 싹 자취를 감췄고 너도나도 더블 딥을 경고하느라 바빠졌다. 흡사 더블 딥을 언급하지 않으면 경제에 대해 뭐라 말할 자격이 없는 양 온통 더블 딥 얘기뿐이다. 급기야 우리나라에선 전직 경제수장이 “출구전략에 관계없이 더블 딥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이에 대해 현직 장관이 “(더블 딥의) 가능성이 작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라고 반박하는 볼썽 사나운 모습마저 연출됐다. 이런 식의 경기 논쟁을 지켜보노라면 그저 답답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도대체 더블 딥이 뭐기에 이 난리인가.

사실 그동안 경제전문가들이 해 온 대부분의 경기예측은 다 틀렸다. 금융위기 이후에 나온 전망도 대개는 현실 추수적이었다. 위기가 터졌을 때는 당장이라도 세상이 망할 듯이 흥분하다가 어느 정도 고비를 넘기는가 싶으면 슬쩍 말을 바꾼다. 이른바 ‘수정’, ‘조정’이라는 근사한 말로 포장하긴 했으나 실상은 경기상황이 바뀌는 것을 보고 나서 치는 뒷북에 불과했다. 금융위기를 예견했다는 사람들도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별반 다를 게 없다. 시장을 설득할 만큼 논리적이지 못했거나 목소리를 크게 낼 만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일이 벌어지고 나서 “내가 그때 미리 말하지 않았느냐”고 우겨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설사 이들이 위기 발생을 사전에 예고했다고 해도 앞으로의 예측이 맞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위기가 올 것이라고 줄기차게 외치다 보면 언젠가는 한 번 맞출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위기가 없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 예측이 줄곧 틀렸다는 점만 빼고는 참으로 놀라운 예언력이다.

경제는 결코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경제는 컴퓨터나 예언력으로 짜맞춘 숫자가 아니라 의지를 가진 수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도 그대로 뒀으면 대공황보다 더한 사태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발빠르게 공조에 나서면서 최악의 사태를 넘겼고, 지금도 G20의 공조 속에 회복 시기를 앞당기고 있지 않은가. 예측은 이 같은 인간의 대응 노력을 예측하지 못한다. 예측이 항상 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앞으로 더블 딥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경기침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모자랐거나 실패했기 때문이지, 더블 딥을 예측했기 때문은 아니다. 더블 딥과 함께 나오는 비관론의 한 축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졌다는 주장이다. 위기를 넘기더라도 낮은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성장잠재력을 높이려는 인간의 노력을 도외시한 기계적인 예측에 불과하다. 더블 딥이나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능성만 믿고 지레 주저앉을 수는 없다. 한국 경제는 그동안 불가능하다는 예측을 뚫고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성장에 배고프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