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물에 누워 받는 마사지 ‘아쿠아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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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비어먼이 곤지암 리조트의 아쿠아테라피스트들을 상대로 아쿠아라나를 강습하고 있다(위). 1단계 치유 도중 금속볼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아래). [곤지암 리조트 제공]

오래 전 일이다. 막 문을 연 작은 실내수영장에 등록을 하고, 어느 날 그곳에 가보니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혼자서 배영을 하다 문득 발버둥을 멈추고 귀를 물에 담근 채 그냥 누워 있었다. 낯선 적막감이 찾아왔다. 그리곤 이내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것들이 툭툭 떨어지더니 이전엔 느껴보지 못했던 아주 비현실적인 편안함이 몰려 왔다. 땅 위에 발을 대고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태고 적에나 있었음직한 그 평화로움에 빠져 시간 날 때마다 그 한가한 수영장을 찾아가 누워있다 오곤 했다.

지난 주말, 경기도 곤지암 리조트 측에서 아쿠아 테라피의 일종인 아쿠아라나 창시자 모니카 비어먼을 초청해 특강을 한다고 했다. 아쿠아라나는 사람을 물 위에 띄어 놓고 물속에서 마사지를 해주는 일종의 수(水)치료 기법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물속의 평화로움’에 대한 기억이 살아났다. 그냥 떠 있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이 편안했는데 거기다 마사지까지 해준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래서 그 자리에서 취재 요청을 하고 달려가 아쿠아라나에 몸을 맡겼다.

비어먼과 함께 섭씨 36~37도 정도라는 따뜻한 물이 가득한 풀에 들어갔다. 그는 먼저 귓병이나 염증은 없는지, 혈압이나 심장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리고 몸을 물 위에 띄워줄 도구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만들었다는 부유 도구는 망사에 스티로폼 조각들을 넣은 것 같은 아주 단순한 것들이었다. “아쿠아라나 2단계까지 하겠다”며 릴랙스하라고 했다.

1단계가 시작됐다. 머리와 다리에 부유 도구를 대고 힘을 빼고 누워 있으면 물은 그저 내 몸을 물 위에 띄어준다. 다리를 받쳐주는 도구는 마치 사람이 내 다리를 꽉 잡아주고 있는 느낌을 줘 그냥 안심이 된다. 비어먼은 내내 몸에서 손을 떼지 않고 천천히 살며시 등을 눌러주고 살살 주물러준다. 이내 몸을 늘려주고 돌려주면서 물과 몸이 한데 섞인다. 이 즈음에서 감동이 몰려왔다. 하나 그것은 금세 가라앉았고 마음의 상태는 평평해졌다. 그냥 다른 사람이 내 몸을 이렇게 멋대로 흔들어대는데도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물에 떠 있는 나를 꽉 잡고 받쳐주는 데 대한 믿음이 깊어가면서 점점 더 몸을 맡기게 되고 마음은 더 가라앉는다. 이 단계의 하이라이트는 함지박처럼 생긴 금속 볼 연주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옮겨가며 금속 볼을 나무 채로 두들기면 종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서 나는 진동에 근육은 저절로 꿈틀거린다. 진동으로 온 몸의 세포를 흔들어 깨워주는 것이라고 했다.

2단계는 부유 도구를 제거하고 물속에 좀 더 깊이 몸을 담그고 마사지를 하는 단계다. 도구를 떼어내고 비어먼은 목과 무릎 밑에 팔을 두르고 아기처럼 안아준다. 몸이 다 자란 뒤 누군가 나를 그렇게 가볍게 안아준 적은 없었다. 그는 내 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지탱해줬다. 여기선 동작이 더 많아진다. 다리와 팔만 잡고 돌리기도 하면서 운동을 많이 시킨다. 졸린 건 아닌데 눈을 뜰 수가 없고, 정신은 맑은데 아무 생각도 들어오지 않는 낯선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마치 스트레스가 말끔히 비워진 상태인 것 같다. 그는 풀의 벽에 내 등을 기대주고 나에게 눈을 맞추고 웃고만 있다. “끝났다”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내가 현실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 풀을 나설 때에야 머릿속으로 생각과 말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양선희 기자

아쿠아라나=물속에서 마사지를 하는 아쿠아테라피의 일종이다. 물속에서 마사지를 시작한 건 원래 1980년 해럴드 덜이라는 미국인 의사가 일본의 마사지 기법을 빌어와 한 와추(Watsu)가 처음이다. 그 뒤 이 와추를 모태로 이런 형태의 아쿠아 테라피 지류들이 생긴다. 아쿠아라나는 모니카 비어먼이 99년 나름의 마사지 기법을 고안해 만든 것으로 독일의 대중적인 물 마사지 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마사지는 3단계까지 있다. 1단계는 부유 도구를 이용해 물 위에 띄워 놓고 마사지를 하고, 2단계는 부유 도구를 제거하고 운동을 시킨다. 3단계는 코 마개를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마사지를 한다. 현재 독일에선 직업학교나 사회교육 과정에서 아쿠아라나를 가르친다.


아쿠아라나 만든 모니카 비어먼
“물은 심신 한꺼번에 치료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

아쿠아라나의 창시자 모니카 비어먼(58·사진)은 원래 스포츠 전문강사였다고 했다. 그는 10년 전 아쿠아라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배드 헤레날브(Bad Herrenalb)에 있는 수치료 센터에서 테라피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에게서 물과 건강에 대해 들어봤다.

Q 아쿠아라나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체육치료학을 공부하면서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함께 치료해야 진정한 치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물이야말로 심신을 한꺼번에 치료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었다. 사람은 엄마의 뱃속에 있을 때 물속에 살았던 세포의 기억을 가지고 있어서 물에 대한 편안함을 느낄 준비가 돼 있다.”

Q 물속에서 느끼게 되는 비현실적인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건가 “물에 들어가면 부력 때문에 심장이 커지고 맥박수가 떨어지면서 호흡이 느려진다. 이게 마음의 안정을 느끼게 한다. 물이 몸을 떠받치며 불편한 압력을 없애주고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함께 편안해진다.”

Q 아쿠아라나는 어떤 경우에 효과적인가 “불면증, 통증, 신경성 두통, 불안과 공포와 같은 현대인들의 증상들을 개선시킨다. 또 뇌출혈로 쓰러진 반신불수 환자나 고혈압, 기능장애 등 환자들에 대해 병원 치료와 병행해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

Q 실제로 환자들도 치료하고 있나 “일의 상당 부분이 병원에서 의뢰하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다. 3년 전엔 병원에서 의뢰한 코마 상태인 의식불명의 남자 환자를 물 위에 띄워놓고 마사지하는 1단계 치료만 14회를 한 결과 깨어나는 것을 보았다. 독일에선 아쿠아 테라피를 많은 질병의 보조치료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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