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현장에서] 국세청장의 '말 바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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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대우에 대해선 세무조사를 안하나.

"대우도 문제가 있으면 세무조사를 한다. "

- 언제 하나.

"금감위 등에서 여러 검토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끝나면, 또 통보가 끝나면 한다. "

- 금감위 결정이 끝나면 하겠다는 건가, 그쪽에서 통보가 오면 하겠다는 건가.

"그것(통보)이 오고, 또 자체적으로 검토해보겠다. "

- 조사권은 청장이 갖고 있으니 직접 밝혀라.

"검토하겠다. "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과 안택수(安澤秀.한나라당)의원간의 6일 국정감사 도중 질의답변이다.

安의원은 세무조사에 성역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우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를 물었고, 安청장은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安청장의 답변은 한바탕 소동을 불러왔다. 즉시 '대우그룹도 문제가 있으면 세무조사한다' 는 기사가 통신을 통해 긴급 타전됐다.

재계가 술렁거렸다. 기사회생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우는 물론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줄 것이라는 전망이 뒤따랐다.

회의장 안팎에서 국민회의 의원들마저 "큰일났다" "대우 쇼크가 다시 오는 것이냐" 고 웅성거렸고, 자민련측에선 "재벌을 다 죽이겠다는 것이냐" (鄭宇澤의원), "세무조사의 칼에 재벌들이 떤다고 말을 막해도 되느나" 고 혀를 찼다.

安청장은 오후 9시가 넘어 속개된 국감에서야 "어느 기업이든 문제가 발견되면 세무조사를 검토할 수 있다는 원론적 표현" 이라고 해명했다.

그의 해명대로라면 현재로선 대우에 대한 세무조사 계획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세무조사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던지는 게 우리 현실이다.

기업의 사활이 달려 있다는 게 재계의 씁쓸한 경험인데 安청장은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한 인상을 의원들에게 심었다.

세무조사 계획이 있다 해도 문제다. 安청장은 "개별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여부는 비밀보호를 위해 밝힐 수 없다" 는 국세공무원들의 금도(襟度)를 벗어났다.

국세행정의 생명인 신뢰와 공정성을 세정(稅政)총수가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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