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이슈] 올림픽의 그늘, 부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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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한국시간) 아테네 고우디 올림픽 콤플렉스에서 벌어진 남자 근대 5종 승마 경기 도중 한국의 한도령 선수가 넘어져 있다. 한도령 선수는 말이 장애물 앞에서 점프하지 않고 갑자기 멈춰 서는 바람에 낙마했다. 한도령은 24위, 함께 출전한 이춘헌은 21위를 했다. [아테네 AFP=연합]

"이 정도 갖고 뭘…. 다른 선수들도 다 그래요."(김영광)

"경기에 집중하느라 피나는 줄도 몰랐어요."(장미란)

올림픽 축구 대표팀 골키퍼 김영광의 굽은 손가락. 처녀 역사 장미란의 해진 손바닥.

영광 뒤에 감춰진 상처다. '조국과 개인의 명예'를 위해 온몸을 던지면서 얻은 달갑잖은 동반자이자 훈장이다.

김영광의 손가락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올림픽을 앞둔 한.일 평가전(7월 21일)에서 슈팅을 막다 오른손 약지(넷째 손가락) 인대가 확 늘어났다. 그래서 연습 때는 중지와 약지를 반창고로 한데 묶었고, 경기 때는 두껍게 테이핑하고 진통제를 먹었다. "경기할 땐 잊어요. 하지만 경기 뒤에는 퉁퉁 붓고 쑤셔 괴롭지요." 그럼에도 경기와 훈련이 계속되니 점점 새끼손가락 쪽으로 휘어간다. 그는 24일 귀국 후 바로 소속팀(전남 드래곤즈)으로 돌아가 훈련에 들어갔다. 주말에 개막하는 국내 후기리그 때문이다.

21일 역도(75㎏ 이상) 은메달을 딴 장미란의 손바닥에선 피가 흘렀다. 까지고 또 까져도 이를 물고 바벨을 들어올린 훈련의 자국이다. "경기를 앞두고 연습량을 늘렸더니 그렇게 됐네요. 손목.허리.무릎에도 늘 파스를 붙이고 지내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얘기를 안 해요."

16년 만의 남자 탁구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하루에 수백번 스매싱을 반복하는 그에게 허리근육 통증은 고질이다. 점프→스매싱→착지가 생활인 남자 배드민턴 복식 금메달리스트 김동문은 어깨.무릎.팔꿈치.허리.아킬레스건 통증에 시달린다. 무더운 아테네에서도 옥매트를 깔고 잤던 이유다. 그는 "경기 후반이 되니 서 있기도 힘들 만큼 허리가 찌릿찌릿했어요. 정신력으로 버텼지요"라며 진통제를 맞고 결승전에 나섰던 상황을 얘기했다.

한국에 첫 금메달은 안긴 유도 이원희. 첫 경기에서 오른손 집게손가락이 탈골됐다. 그러나 집게와 가운뎃손가락을 테이프로 묶고 4연속 한판승을 거뒀다. 귀국 후 초음파 촬영을 한 결과 손가락 인대 근육조직이 80%가량 손상돼 수술을 받아야 할 처지다.

부상의 '물귀신'은 어느 선수에게나 따라다닌다. 환희 뒤에서 부상과 싸워 이기기도, 불구가 되기도 한다.

여자 사이클 스프린트 우승자 로리 앤무엔저(캐나다)는 1994년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99년엔 산악자전거를 타다 6m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져 선수 생명이 끊어질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오뚝이처럼 살아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8일 밤 투창 결선에 나서는 미국의 브루 그리어는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절뚝거리며 예선을 치렀다. 고통을 참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대회도 아니고 올림픽이다. 어떤 선수라도 승리를 위해 몸을 던질 것이다."

"그들의 훈련 장면은 정말 눈물겨울 정도다. 불의의 부상으로 좌절한 선수들에게도 아낌없이 갈채를 보내자." 태릉선수촌 의무실장 김은국 박사의 말이다.

정제원.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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