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권진규는
자살 직전
앳된 비구니의 얼굴을 빚었다
평생 얼굴만 만들어온
대가의 마지막 작품치곤
의외였다
어느 청명한 가을날
칠번국도변 작은 휴게소에서
한 비구니는
오래도록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다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마치 더 깎을 것이라도 남아있다는 듯
다만 잠자리 날개 같은 가을날이었다
- 이홍섭 (34) '적멸'
가라앉아 있다. 잠수함의 잠망경만이 가까스로 수면 위로 나와 세상을 살펴보고 있다. 한 우연의 비구니가 조각가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휴게소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얼굴이 된다.
인간조차 사물이 돼버리는 시각이 신선하다. 마침 가을 잠자리의 소멸에 겨운 이미지가 곁들인다. 혜릉이냐 신수냐의 거울 논쟁과는 상관없이 괴괴하다.
꼭 뭇 삶은 바깥 세상에서 비바람인데 여기는 누군가가 죽은 것 같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