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하려면 한국 문화부터 알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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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떡볶이에 140억원이나 투자한다고 한식이 세계화됩니까.”

서울대 김광억(사진) 인류학과교수는 정부가 주도하는 한식 세계화 운동에 대해 “논의 수준이 너무 초보적”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12~14일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가 여는 ‘세계화 시대의 중국과 동아시아 음식 문화’ 심포지엄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다. 6년 전부터 서울대에서 ‘음식의 인류학’ 강의를 해온 그는 “음식은 한 나라 문화가 전파되는 과정에 녹아 소개돼야지, 영양학·맛을 따져 ‘우수하다’며 들이민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심포지엄엔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허츠펠드 교수, UCLA 옌 윤시앙 교수 등 세계적 인류학자 20여 명이 참석한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식의 세계화로 정부와 음식업계가 떠들썩하다.

“너무 떠들썩해서 어안이 벙벙하다. 음식에 대한 고찰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에 진출한 일식의 경우, 일본이라는 나라가 서양에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식도 세계화됐다. 우리는 한국 자체보다 음식만 세계화시키자고 한다.”

-한국 문화를 우선 알려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한국을 즐길 줄 알아야 음식에 얽힌 얘기를 즐길 수 있다. 프랑스·일본 요리가 인기 있는 건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궁금증과 동경 같은 게 있기 때문이다. 서양에선 한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아직 거의 없다. 이런 상태에서 떡볶이에 예산 밀어 넣는 건 난센스다.”

-구체적인 문제점을 짚자면.

“음식을 너무 영양학이나 조리법 위주로 접근한다. 음식이 약인가? 음식엔 그 나라의 역사·문화·상징·예술이 녹아 있다. 그런데 이런 문화에 대한 국민적 안목을 키우지 않고 ‘매운맛이 먹힐 거다’ 라는 식으로만 음식을 따진다.”

-음식에 각자의 스토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건가.

“아니다. 그러면 또 다들 스토리 만든다고 난리다. ‘음식 스토리 만들기 대회’ 열고 음식마다 억지로 이야기를 갖다 붙일 거다. 음식을 먹는 방식엔 그 나라의 문화적 습성이 드러나므로 억지 이야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음식에 나타난 문화적 습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예를 들어 음식의 변화는 문화의 변화를 가져온다. 온 집안 사람이 모여 김장을 하던 때를 생각해봐라. 이 때는 여성 가족 구성원 사이에 위계 질서가 있었다. 제일 어른이 나서서 이웃·집안 간의 김장 작업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김장이 사라지면서 시어머니의 권위도 많이 약화됐다. 또 도시락이 급식으로 대체되면서, 여성은 부엌에서 해방됐다. 요즘 낮에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손님들이 모두 여성들이다. 여성은 이제 음식 생산자에서 음식 소비의 주체로 바뀌었다.”

-음식 문화에 대한 안목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걸까.

“음식에 대한 담론이 바뀌어야 한다. 음식이 다른 나라에 소개되고 현지화되는 복잡한 과정을 인류학적으로 성찰해봐야 한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하는 비교 연구도 중요하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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