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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쇼] 이주헌 VS 이윰 '미술관의 안과 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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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미술이 미술관을 뛰쳐나오고 있다. 대중과 직접 만나기 위해서다. 소수 평론가들의 현란한 수사 (修辭) 와 작가들의 자족적 창작 활동으로 미술은 점점 대중과 멀어져 이제 '미술의 위기' 마저 거론되고 있다.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요즘 미술관은 대중의 욕구를 좀더 적극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주차장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전시 기획면에서나 기능면에서 변신을 기하고 있다.

평소 대중과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와 신세대 아티스트 이윰씨가 만나 평론가로서, 작가로서, 또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는 애호가로서 미술 대중화로 가는 길에 대해 긴 얘기를 나눴다.

▶이주헌 = 여러 전시회를 통해 퍼포먼스나 비디오 작업은 많이 봤지만 대화를 나누는 건 오늘이 처음이네요. 이름이 재미있다고 항상 생각했는데, 본명인가요?

▶이윰 = '이유미' 인데, 줄이면 부르기도 쉽고 특이해서 만든 거예요. 이선생님 글은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아 평소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주헌 = 최근 작가들이 미술관 순회버스를 타고 정류장마다 내려 관람객에게 작업을 보여주는 '버스' 전을 기획하셨지요? 젊은 미술가들이 대중과 호흡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버스' 전도 그렇지만 올해는 어느 때보다도 미술이 미술관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고 또 과거에는 미술관에 전혀 어울릴수 없었던 일상적 소재가 어엿하게 전시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탈 (脫) 미술관' 과 '탈 (脫) 장르' 현상이라고나 할까요.

▶이윰 = 작가의 입장에서 설명하자면 미술관이라는 공간이 점점 답답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미술 하면 뭔가 심오한 것, 미술관은 웬지 고급스러운 장소라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대중과 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예술은 즐거운 것, 즐기는 것이 돼야 한다고 믿어요. 또 예술이란 예술가가 창작과정에서 발산하는 에너지를 관객과 나눠가지며 함께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우리 미술계를 보면 점점 작가와 평론가 소수만이 공감하는 '우리만의 미술' 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주헌 = '소통' 에 대한 고민이군요. 사실 예술의 가장 크고도 원초적인 목적이 보는 이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대중은 작품의 난해함을 탓하고 작가는 대중의 몰이해를 원망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미술의 현주소인 것 같아요. 가령 미술관 전시장을 놔두고 주차장에서 판을 벌이는 것이나, 먹는 것.입는 것.노는 것 등 일상의 모습과 대중문화적 요소를 끌어들인 전시가 점점 늘어나는 것도 이러한 일방통행식이었던 과거를 반성하는 움직임이 아닐까 합니다. 또 대중문화가 주류문화로 위세를 떨치게 된 지금 미술 역시 어떤 식으로든 사회의 변화상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이윰 = 그런 점에서 저도 반성을 많이 해요. 고백하자면 예전에는 나와 감수성의 코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요. 가령 제 퍼포먼스를 보고 '저것도 예술이냐' '너무 튄다' 고 의문 섞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세대차이가 나서 그런 거라고 여겼어요. '내 또래들 사이에서 통하면 된다' 는 고자세였죠. 하지만 지금은 성실한 작가라면 관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 동참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쪽이에요. 작가들은 흔히 불친절하고 무관심하기 쉬운데 그러면 안되죠. 작가의 존립 기반은 대중에 있으니까요.

▶이주헌 = 동감입니다. 전 미술의 대중화는 작가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고 봐요. 다시 말해 미술관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만큼이나 '보는 만큼 알게 된다' 는 말도 무게를 지니고 있다고 봐요. 잘 볼 수 있으려면 알아야 하지만 일단 알게 하려면 보게끔 만들어줘야 해요. 제가 강의하는 미술강좌에 나온 주부들을 보면 잠재된 문화적 욕구는 정말 절실한데 가이드 역할을 해줄 사람이 없어 그것을 해소하지 못하거든요. 전시가 열리면 기본적인 설명은 물론이고 특강이나 작가와의 대화 등을 통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게 미술관이 해야할 일인 것 같아요.

▶이윰 = 시스템 얘기를 하셨으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작가도 단순히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는 화가나 돌을 쪼고 깎는 조각가 정도가 아니라 자신과 대중이 어떻게 만나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정교하게 플랜을 짜는 기획자가 돼야할 것 같아요.

▶이주헌 = 맞습니다. 저는 그래서 창작에서부터 전시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하나의 프로젝트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작가뿐 아니라 전시기획자.미술평론가 등 미술계 종사자들이 '저변을 넓혀야 살아남는다' 는 의식을 가져야지요. 미술을 대중이 이해 가능하고 수용 가능한 무엇으로 만들어야 전시도 하고 작품도 팔고 평론도 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겠어요? 제 말은 미술관이 대중의 비위를 맞추는 영합적인 이벤트성 기획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소비자층을 자꾸 두텁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에요. 전 대중의 욕구가 커지고 구체화함에 따라 미술관도 그에 맞춰 진화해나갈 거라고 보는데, 이를테면 좀더 많은 사람들을 그 공간에 끌어들이기 위해 음악.공연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가 합쳐진 복합문화공간 형식으로 바뀔 거라는 거죠. 파리 퐁피두 센터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이윰 = 제 꿈은 바로 대중의 힘을 등에 업고 창작활동을 하는 거에요. 대중의 감수성을 읽어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이번에 '버스' 전으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즐기고 싶어하지만 미술이 너무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아쉬워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전문가처럼 예술로서 1백% 이해하는 게 아니더라도 작업을 매개로 그 느낌을 주고 받을 수만 있으면 진정 행복한 예술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주헌은...]

이주헌 (38) 씨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한겨레 신문과 가나아트 기자를 지냈다. 평소 아카데믹한 비평보다는 TV.신문.잡지 등 매체를 통한 대중적인 평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반인들이 자신의 글을 읽고 미술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게 그의 바람이다.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내 마음 속의 그림' 등 미술안내서 중심의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아트스페이스서울 관장이다.

[이윰은...]

이윰 (28) 씨는 '무서운 신세대' 로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는 튀는 외모답게 신세대의 럭비공같은 발랄함을 퍼포먼스와 비디오.사진.설치 등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내는 '전방위 예술가' .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것이 행복하다' 는 그는 지난해 쌈지 아트프로젝트 후원으로 '매란국죽 (梅蘭菊竹)' 이라는 전시를 가졌으며 최근 직접 기획한 '버스' 전을 성공리에 마쳤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정리 =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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