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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앞둔 정치 싸움에 … 국감, 정책은 없고 ‘정쟁’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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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9일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의 국정감사장에 의원석이 텅 비어있다. 전날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오세훈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의원에게 “흠집 내기”라고 비난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면서 파행을 빚은 때문이다. [김형수 기자]

단 20일간 정부기관 478곳을 들여다봐야 한다. 국정감사는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권리인 동시에 의무의 장이다. 하지만 올 국감 역시 성적표가 부진하다. 대부분 국정감사장이 정치공방으로 달아오르고 피감기관들은 ‘소나기’ 피하는 심경으로 임한다. 22년째인 국감을 두고 개선론이 거세지는 이유다.

“이거 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지난 9일 오후 3시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장. 회의장 주변에서 서성대는 소방방재청 직원들의 표정엔 불만이 가득했다. 원래 오전 10시에 시작됐어야 할 국감이 여야의 충돌 때문에 계속 늦춰진 탓이다. 민주당은 전날 서울시 국감 때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이 “민주당이 한나라당의 유력 정치인(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사실을 왜곡해 흠집 내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문제 삼아 사과를 요구하며 회의를 보이콧했다. 결국 장 의원이 해명을 하고 회의가 시작된 시점이 오후 3시45분. 이 바람에 이날 오후 중앙119 구조대를 방문키로 한 현장 시찰은 취소되고 말았다. 소방방재청은 국회의원들의 소방헬기 시승 행사를 며칠 전부터 준비해왔다.

1988년 국정감사가 부활한 이래 올해로 22번째지만 국감장은 좀처럼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국정 대안 제시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 국감’이 아니라 국감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정치 국감’의 행태다. 특히 28일 실시되는 재·보선을 앞두고 있어 여야의 정치 공방은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교과위는 민주당의 정운찬 총리 관련 의혹 제기로 7일부터 내리 사흘간 파행을 겪고 있다. 8일 경기도교육청 국감은 아예 기관장 업무보고도 받지 못한 채 종일 공전했다. 9일 정무위의 예금보험공사 국감에서도 예보 자문위원 활동 내역을 파악하기 위해 정 총리를 증인으로 부르자는 민주당과 이에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입씨름으로 한때 회의가 중단됐다.

자료 제출 부실 논란도 단골 레퍼토리다. 복지위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9일 국감에서 “건보공단 직원들에 따르면 공단 측이 자료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고의로 자료 제출을 방해하고 있다고 한다”며 상임위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정부가 4대 강 사업이나 정 총리 관련 자료를 제대로 주지 않는다고 잔뜩 골이 나 있다. 야당뿐 아니다. 한나라당 조문환 의원은 6일 정무위 국감장에서 “128페이지짜리 자료를 어젯밤 11시에야 보내주면 어떻게 읽어보란 말이냐”고 항의했다.

일단 불러놓고 보자는 식의 증인 채택도 국감의 고질병이다. 디지털방송전환 정책 관련 참고인으로 7일 문방위에 출석한 경원대 정인숙 교수는 오후 2시부터 밤 11시40분까지 국감장에 앉아 있었지만 단 한번 1분짜리 답변을 했을 뿐이다. 고흥길 문방위원장도 민망했던지 회의를 마칠 때쯤 14명의 증인에게 “한 번도 발언 안 한 분 계시냐”고 물었다.

◆개선책은 없나=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감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극복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올 초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는 ‘상시 국감’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서강대 이현우(정치학) 교수는 “국감을 단시간에 몰아서 하다 보니 피감기관 입장에선 하루 이틀만 버티자는 생각을 하게 돼 자료 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의원들도 한건주의식 질의를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상임위별로 연중 적당한 시기를 골라 국감을 하도록 하고, 피감기관의 특성에 따라선 2~3년에 한 번씩 받도록 하면 내실을 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하·허진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바로잡습니다▒

경원대 정인숙 교수는 증인이 아니라 참고인이며, 답변은 한 차례가 아니라 두 차례 한 것으로 바로잡습니다. 또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자신이 민주당에 사과한 게 아니라 발언의 진의를 해명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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