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객관성.일관성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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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사건이 신문 기사의 크기와 방향을 결정해 주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경우 기사가 사건의 성격을 만들어주고 그 방향을 유도하기도 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신문 보도가 중립적이며 객관적이란 허구이기가 쉽다.

오히려 편집자와 기자의 숨은 생각과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사건이 커지기도 하고 마땅히 중요하게 다룰 것이 슬그머니 실종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편집자와 기자의 양식과 진지함, 사태에 대한 안목과 일관성이 우선적인 자질로 요구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두 건의 보도를 분석해 본다.

8월 31일의 신문들은 여권의 신당 창당선언을 일제히 보도했다.

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비중과 방향은 서로 달랐다.

네 신문의 1면만 비교해 본다면, 한겨레는 중간 크기의 '당 지도부 공천 좌우 종식' 으로 이 사안을 보도했고, 중앙일보와 조선일보는 똑같이 이 선언을 머리기사로 중시했다.

그런데 그 시각은 약간 달랐다.

조선일보의 제목이 '인물 교체 국민 정당' 인 것에 비해 중앙일보는 '중산층 서민 대변 정당으로' 였다.

동아일보는 신당 창당건을 살짝 피해 '세풍 (稅風) 의원 사법처리' 라는 기사 아래 '중산층의 국민 정당' 으로 취급했다.

신당에 대한 생각과 시각이 이렇게 달랐다.

두 신문이 새 정당의 '인적 개편' 에 치중한 반면 다른 두 신문은 '당의 이념적 성격' 에 접근하고 있어 대조됐다.

이 두가지 시각은 두루 필요한 일이겠지만 우리의 신문 일반은 인물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 공당 (公黨) 으로서 정당의 존재성을 상대적으로 폄하하는 경향을 짙게 갖고 있다.

게다가 후속 관련 지면을 보면 주류와 비주류, 신참 예상자와 기득권자, 그리고 이런 인맥들이 이 신당에 어떻게 포진하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신문들이 이런 보도 태도를 취하는 한 우리 정당이 정책정당으로서 나아갈 입지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회 칼럼에서 나는 우리 지면에 정치기사가 너무 많다는 점을 불평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면의 많은 기사들은 정치인들의 사사로운 경쟁과 그 내막으로 더 많이 도배되고 있다.

그것은 정치의 공공성을 훼손하면서 '그들만의 쇼' 에 국민들의 관심을 몰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더욱 못마땅한 것은 청와대 비서실장과 전직 대통령의 골프 회동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동이 앞으로 어떤 사태의 조짐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에 대한 보도가 없는 한 그 기사 자체는 동정란의 화제나 기자의 메모감으로 지켜볼 일이지 섣불리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성급한 것이었다.

또 다른 기사는 말 많은 '두뇌 한국 21 사업' 기사다.

그것이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은 막대한 예산을 집중해 특정 대학에 지원하면 당초 목적은 살릴 수 있지만 대부분 다른 대학은 그만큼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고, 고루 배분하면 세계 초일류 대학 건설이라는 목표가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업 대상자의 결정에 신문마다 그 반응은 다르게 나타났다.

서울대에로의 집중투자에 비판적인 신문은 '독식' '휩쓸어' 란 어휘를 썼고 호의적인 신문은 '모든 분야 뽑혀' 란 말로 표현했다.

중앙일보는 1면에 이 사안을 '객관적' 으로 보도하면서 사설에선 긍정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사회면 머리기사에서는 '특정대학 몰아주기 우린 들러니 두뇌냐' 란 표제로 탈락 대학들의 '거센 반발' 을 보도하고 있다.

같은 날짜의 이 상반된 태도는 논설실과 편집국간의 의견 상위에서 빚어진 것이겠지만 하나의 사안에 대한 한 신문의 태도가 아직 공적인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 실례로 내게는 받아들여진다.

김병익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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