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원자바오 방북이 남긴 씁쓸한 ‘뒤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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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을 지켜본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시선은 혼란스럽다. 국제사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북한의 돈줄을 죄고 있는 판에 2000만 달러 규모로까지 일컬어지는 무상 원조를 북한에 약속했다고 하니 말이다. 정부는 “역대 그 어느 때보다 (6자회담 참가국 중 북한을 뺀) 5자 공조가 완벽하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하지만 원 총리의 이번 방북은 그 5자 공조의 기반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중국은 왜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했을까. 해답은 중국이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북한이란 존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와 연관 지어 볼 필요가 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 중국은 세력 완충 지대로서 북한 체제가 안정되고 현상을 유지하는 게 자국의 국익에 더 유리하다고 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도발 행위를 맹비난하면서도 북한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중적 태도가 설명될 수 있다. 원 총리와의 혈맹 연대를 과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같은 점을 간파하고 5자 공조의 균열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누가 뭐래도 중국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란 메시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려 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중국의 원조가 명백하게 유엔안보리 결의안 1874호를 위반한 게 아니란 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명분도 없다. 근본적으로는 중국이야말로 북한에 직접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설득할 수 있는 존재란 점에 있다. 그러니 ‘중국 역할론’과 ‘대북 원조에 대한 유감’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제재란 처방이 갖는 한계를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제재를 강화한들 완벽한 봉쇄가 아닌 이상 북한으로 돈과 물자가 유입되는 틈새가 있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이 북핵 문제의 유일한 해법은 채찍과 당근의 적절한 배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배합을 어떻게 해야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는지 그 황금비율을 아무도 모른다. 북핵 문제는 그 어떤 고차방정식보다 더 풀기 어려운 난제란 점을 새삼 일깨워준 것, 역설적으로 원 총리의 이번 방북이 남긴 교훈이다.

예영준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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