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님, 물 좀 먹어보실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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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U-20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6일 오후(현지시간) 숙소인 JW 메리어트호텔의 수영장에 서정원 코치(가운데)를 빠뜨리고 있다. [카이로=연합뉴스]

U-20 청소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파라과이를 꺾은 다음 날인 6일(한국시간). 청소년 대표팀은 카이로 외곽의 숙소 JW 메리어트호텔 수영장에서 수중 훈련을 했다. 피로 회복은 물론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도 효과가 있어 대표팀이 때때로 활용하는 훈련이다.

수중 훈련이 끝나갈 즈음 웃통을 벗어제친 선수들은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있던 서정원 코치에게 달려들었다. 서 코치를 수영장 속으로 빠뜨리기 위해서다. 서 코치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티자 이승렬이 논개처럼 서 코치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함께 뛰어들었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됐지만 서 코치는 끌려가는 동안에도, 물에 빠질 때도, 물에서 나왔을 때도 특유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선수들이 우승 헹가래를 칠 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물에 빠뜨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후 나머지 선수들도 서로 수영장으로 밀고 빠뜨리며 모처럼 긴장을 풀고 해방감을 만끽했다.

청소년 대표팀 선수들이 코치를 물에 빠뜨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첫 번째 ‘희생양’은 김태영 코치였다. 미국과 조별리그 3차전에서 3-0 승리를 거두고 조 2위로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후 시작된 청소년 대표팀만의 승리 세리머니다. 9일 열리는 가나와 8강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한다면 다음 희생자는 홍명보 감독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그 속에 함축된 의미는 작지 않다. 첫 경기 패배를 딛고 일어선 대표팀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얼마나 서로 신뢰하고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의식을 통해 선수단의 단합이 이뤄지는 법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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