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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도망자신창원' 변론.집필 엄상익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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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스스로 '변호사 저널리즘' 이란 신조어를 만들고, 이 방면 글 (책) 을 통한 사회적 변호기능의 선구를 자임하는 엄상익 (嚴相益.45) 변호사. 지난 93년 '은빛 남자의 금빛 이야기' 를 펴낸 후 지금까지 '피고인 각하' '엄변호사가 쓴 대도 조세형' 등 모두 6권의 책을 썼다.

그리고 최근 '도망자 신창원' 의 집필에 들어가 다시 화제에 올랐다.

언뜻 '화제 인물' 을 쫓아다니며 자신의 명망을 채우려는 사람으로 여겨질 부분도 있어 보인다.

글의 소재를 찾아 그런 유형의 인물을 찾아다니며 변호를 맡고 거기서 얻어진 정보를 단행본에 담아낸다는 시각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그의 '변호사적 글쓰기' 가 던지는 사회적 의미를 듣기 위해 엄변호사를 만났다.

[만난사람= 허의도 문화부 차장]

- '변호사 저널리즘' …. 참 흥미로운 표현이다. 더 구체화하면 어떤 개념인가.

"저널리즘은 기자 고유의 영역이지만 변호사는 그것과 다른 차원에서 저널적 작업을 할 수 있다. 온통 세인의 관심을 끈 범죄자가 있었다고 치자. 신문.방송의 언론은 그가 체포돼 구치소에 갇힐 때까지의 상황을 여러가지 시각으로 기사화하고는 그것으로 끝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면회와 재판과정에 개입 등을 통해 '그 이후' 의 것을 담아낼 수 있다. "

- 사실 기자도 '그 이후' 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취재 불능상태에 있지는 않다.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기자와 변호사는 관점이 현저히 다르다.

기자는 관찰자적 입장에 서 있는 반면 변호사는 사안에 대해 주체적인 입장이다. '직접적인 부닥침' 이라는 표현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연유로 변호사는 '관통' 이 가능하다. 가령 어떤 사건.사고 발생 이후 그것이 법적으로 매듭되는 과정에서 온갖 부정.부패.불의의 구조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를 그냥 버려둘 수는 없다. 바로 '변호사 저널리즘' 이 감당해야 할 사회적 몫인 셈이다. "

- '변호사 저널리즘' 은 기존의 언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인가.

"사실 우리 언론의 범죄보도엔 문제가 많다. 수사기관은 피의사실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언론은 그것에 거품을 보탠다. 판결 이전까지의 '무죄 추정' 원칙이 송두리째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변호사의 반론권 행사가 불가피하다.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 반론권이 오히려 인권이고 나의 '변호사적 글쓰기' 는 인권은 물론 인권 외 사회정의를 위한 길을 걸어야 하는 변호사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의한 작업이다. "

- 그 진실이 혹시 범죄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방향으로 다시 오도될 우려는 없나.

"지난번 조세형씨 변호 때도 그랬지만 이번 신창원씨의 변호를 맡고 책까지 낸다는 말에 그런 지적이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범법자로의 그들의 모습을 부정하자는 게 아니라 수사기관과 언론의 '일방성' 에 제동을 걸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가령 신창원씨는 '범죄자 아이덴티티' 가 무척 강하다. 스스로를 '생명을 구걸할 수 없는 죄인이자 악마' 로 부를 정도다. 문제는 우리가 범죄자를 범죄사실 하나로만 바라본다는 거다. 범죄라는 이름의 '점' …. 본래 점은 까맣다. 하지만 범죄자이기 전의 인간을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점은 회색빛으로 희석될 거 아닌가. "

- 까만 것을 회색으로 희석하는 게 미화 아닌가.

"그런 뜻이 아니라 진실은 범죄를 다루는 수사기관이나 법정 바깥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거다. 지난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과 재벌총수 사이에 얽힌 비자금 재판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는 변호인 자격도 아니면서 30회 가량 진행된 재판에 한번도 빼놓지 않고 갔다. 검사.변호사는 각기 이미 짜여진 틀 속에 갇혀 있었고 판사는 그 다른 두개의 틀 위에 그냥 얹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정작 진실은 휴게시간 화장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피고인들이 주고받는 말에서 법정의 답변은 모두 거짓임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상황을 '피고인 각하' 라는 제목의 책으로 낼 결심을 했다. 그러나 묶어줄 출판사를 찾지 못해 자비 (自費) 출판의 방도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전혀 뜻밖에도 책은 꽤 많이 팔렸다. 일본의 문예춘추사를 통해 일어판도 냈다. "

- 소외된 자에 대한 변호에 적극 나서는 이유라도 있나.

"75년 처음 고시에 도전한 이후 나는 82년 합격할 때까지 무수히 낙방을 했다. 그 무렵 나는 기도를 했다. 판사.검사에는 마음을 두지 않을 테니 고시병 (考試病)에서만 좀 벗어나게 해 달라고…. 그 기도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나는 바로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 다른 결심을 하나 했는데 그것은 '빠삐용' (영화 주인공) 같은 인물 5명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일을 하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변호사를 대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국선변호에 나가면 아픔.사연.참회를 읽는다. 반면 사회적 지위가 있는 경우엔 탐욕.계산.정략만을 볼 뿐이다. "

- 신창원의 얘기를 좀 하자. 그가 감옥에서 분노하며 자신의 심경을 책으로 내주길 간청한 이유는 뭔가.

"수사기관의 발표와 언론보도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우선 경찰은 수사협조를 전제로 신창원씨와 맺었던 약속을 파기했다. 동거녀들에 대한 구속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언론이 자신에 대해 과장.허위보도한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불쾌감이 강하다. 그래서 그는 16번에 걸친 경찰과의 조우 등을 포함해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한 것이다. "

- '신창원 - 수사기관과의 약속' 이 어떤 구속력이라도 있는 건가.

"선진국에선 '플리 바겐' (plea bargain) 이라 하여 수사기관과 범죄자 사이 협정을 지키는 경향성이 있다. "

- 지금까지 신창원을 몇 차례나 만났나.

"지난 7월말 부산으로 내려가 하루 8시간씩 3일에 걸쳐 만났다. 그의 말에는 만화적 발상도 없지 않을 것으로 보여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책에 옮길 사항과 신창원씨가 최후진술로 남겨둬야 할 사항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조율했다. 놀라운 것은 조세형씨도 그랬지만 기억력이 탁월하고 표현력이 뛰어나 말이 바로 글이 된다. 그것은 다른 대부분의 범죄자들이 상황설명을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것과 너무 대조적이다. "

- 신창원 변호 건은 어떻게 전개할 건가.

"이미 알려진 대로 이번 변호는 조세형씨의 부탁과 신창원씨의 아버지.형의 직접적인 요청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 나는 신창원측과 2개의 계약을 했는데 하나는 변호계약, 다른 하나는 반론에 대한 계약이다. 재판에 대해선 그의 속죄유도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반론권 이행 부분은 책 발간을 포함해 여러 경로로 진행할 예정이다.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그가 비록 감옥에서나마 인격 자체를 포기하지 않도록 교화를 하는 일이다. "

그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인간에겐 천사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이 뒤섞여 있다. 그래서 나는 평면이 아닌 입체를 통해 양 극단의 내면을 그리려고 한다" 고 했다.

그리고 "현대인은 누구든 카프카 '변신' 에 나오는 주인공 K처럼 벌레로 전락할 수도 있는데 주변인의 편에 서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가" 라는 반문의 말을 보탰다.

◇ 엄상익 변호사는…

▶54년 경기도 평택 출생 ▶77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78년 군법무관 임용시험 합격 후 82년까지 군 (軍) 판사 역임

▶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93년 '은빛 남자의 금빛 이야기' (좋은생각) 를 펴낸 이후 96년 '엄마 합의합시다' (나남) , '피고인 각하' (미래미디어) , '하나님 엄변호삽니다' (낮은울타리) , 97년 '임종연습' (서로사랑) , 98년 '엄변호사가 쓴 대도 조세형' (명경) 발간 ▶시사프로그램 '여기는 현장' (96년.KBS) , '사건파일' (98년.SBS) 진행. 현재 케이블채널 '법과 생활' 프로그램 진행 중

사진 = 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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