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 신작장편 '로뎀나무 아래서'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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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소설가 정찬씨 (46)가 신작장편 '로뎀나무 아래서' (문학과지성사.6천5백원) 를 펴냈다.

그동안 신과 구원, 절대권력과 인간 등 묵직한 주제에 천착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이 '연애소설' 임을 공공연히 내세우면서 슬그머니 가벼운 변신을 시도한다.

그러나 새마을운동과 유신의 시대였던 70년대, 그 중에도 서울대 농대생 김상진이 유신에 항거하며 할복자살했던 75년 전후의 청춘이 얼마나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 나이 열아홉 살에서 스무살 사이…영혼에 각인된 것들을 시간순으로 짚어보면…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일…대학시험 낙방…유영숙과의 만남…여동생의 음독자살과 아버지의 죽음이 그것이다. "

소설의 첫머리에서 보듯 어둡고도 절망적인 청춘의 초상이 겪는 사랑은 두 갈래. 대학시험장에서 스치듯 만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인 유영숙과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 에 나오는 구원의 여인상 헤르미네를 자처하면서 다가온 한영채로 나뉘어있다.

전자가 구원의 이상 (理想) 이라면 후자는 일상 (日常) 의 구원. 그러나 이들의 연애는 궁극적 구원이 되지 못하고, 청춘이 아프게 겪는 통과의례이자 상처로 끝난다.

주인공에게 아버지 유언처럼 남긴 '로뎀나무' 는 구약성서에 생명의 상징으로 그려지는 식물이자 T.S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소재.

고전 문학을 대화에 올리면서 나누는 이들의 연애는 90년대 청춘들에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릴법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관념적인 분위기 속에 시대가 바뀌어도 청춘을 구성하는 공통된 요소로 순결한 고통과 치명적인 사랑, 그리고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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