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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물가가 걱정스럽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물가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이 최근 들어 더 불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에다 줄줄이 예고되고 있는 공공요금 인상과 제철을 만난 부동산값 등 가시적 요인들만도 한둘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모처럼 쌓은 저물가의 둑이 흔들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대로 두면 계속되는 금융불안과 더불어 회복기 경제에 복병 (伏兵) 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물가와 관련해 가장 우울한 소식은 국제원유값의 급등이다.

현물시장에서 중동 두바이산 원유값은 20일 배럴당 20.17달러로 97년 10월 이후 22개월 만에 20달러 시대로 재진입했다.

국내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일종의 기준원유마저 20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유가상승은 국제수지 악화는 물론 물가에 치명적이다.

국제원유값이 배럴당 1달러 뛰면 무역흑자는 10억4천만달러가 줄어들며 소비자물가는 0.09%, 국내기름값은 평균 ℓ당 14원의 인상요인이 발생한다.

우리 경제는 더구나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구조에 에너지 소비의 가격탄력성도 너무 낮아 국제유가 상승 파장을 완충시킬 장치나 능력이 취약하다.

더 큰 문제는 경기회복세를 타고 소비형 수입 급증 등 사회 곳곳의 이완된 분위기다.

그동안 물가가 안정됐다지만 실은 소비수요 위축과 환율 하락에 힘입은 바 컸다.

하지만 경기회복을 위해 시중에 자금이 많이 풀리면서 인플레 위협은 상존해온 게 사실이다.

여기에 공공요금만 해도 수도권의 상수도값 인상에 이어 고속도로통행료 인상도 예고돼 있고 여타 요금도 언제까지 억누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집값.전셋값 상승에 이어 임대료도 들먹이고 있다.

임대료 상승은 그대로 비용상승으로 이어져 제품가격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적자재정도 걱정거리다.

정부는 최근 중산.서민층 안정을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면서 세출수요를 대폭 부풀려 놓았다.

대표적 선심성 사례로 농어민 빚보증을 정부가 대신 서기로 한 것은 물론 공무원 처우개선을 위해 봉급인상을 이미 약속한 상태다.

경기회복에 따른 세수확대로 내년에 통합재정수지 적자폭을 국내총생산 (GDP) 의 3.5%로 낮춘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성은 의문시되고 있다.

재정마저 인플레 수속 (收束) 과는 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물가란 이상하다 싶으면 이미 수속의 기회를 놓치기 십상이다.

물가가 오르면 봉급자 소득은 저절로 떨어지게 돼 중산층 대책도 빛좋은 개살구가 되기 쉽다.

사정이 이런데도 선거가 가까워서인지 정부가 인플레에 뒷짐을 진 모습이다.

이제부터라도 물가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다시 끌어올려 풀린 분위기를 다잡고 인플레 수속에 나서야 한다.

'물가불감증' 이야말로 경계하면 할수록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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