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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e칼럼

유럽의 땅끝 OITAVOS GC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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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포르투갈 지도를 들여다보며 한참을 헤맸다. 아무리 봐도 수도 리스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리스본의 포르투갈어 표기는 리스보아(Lisboa)였다. 리스보아는 대서양쪽으로 돌출된 유럽대륙의 서쪽 반도, 테주강 하구 구릉 지대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탓인지 지중해 쪽 도시들보다 밝고 화려한 색상의 도시. 당연히 바다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지중해처럼 잔잔하지 않은 격랑의 바다....

리스보아에서도 북서쪽으로 한 시간 쯤 여유 있게 차를 몰고 가다보면 유라시아 대륙 최서단인 로카곶(Cabo da Roca)에 도착한다. 이곳은 유럽의 땅끝 마을로 천혜의 아름다움과 땅끝이라는 상징성으로 우리나라 TV CF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곳이다. 오래 전, 사람들은 이곳이 정말 세상의 끝이라 믿었고 여기에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로카곶 자체가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지만, 리스보아에서 로카곶으로 가는 길은 내내 절경이었다. 가다가 적당한 바닷가 마을이 나오면 어디라도 차를 세우고 식사를 하면서 대서양의 평화를 감상할 수 있다.

짙푸른 바다와 하늘, 초원,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야생화, 그리고 빨간색 등대, 깎아지른 절벽과 백색으로 부서지는 파도. 이런 온갖 색들이 로카곶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 그렇지만, 로카곶에서 보는 것은 결국 그저 아득한 바다, 마치 영화 일 포스티노의 그 바다를 연상시키는 투명한 청녹색의 대서양은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다.

선원들은 로카곶을 ‘리스본의 바위’라고도 부른다. 신트라 산지가 대서양으로 돌출되어 형성된 곶으로, 144m의 절벽 위에 등대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벽 끝엔 포르투갈 국민 시인 카몽에스가 남긴 지극히 당연한 말이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이 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허걱... 저 심플한 직설 화법! 역시 위대한 말은 평범한가 보다.

아마도 바스코 다가마와 같은 위대한 포르투갈 탐험가들은 여기서 저 바다를 내려다보며 젖과 꿀, 무희와 향신료가 넘치는 파라다이스 인도를 꿈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탐험가들은 같은 바다를 보며 그린 정복의 꿈을 키우고 있었다. 대서양에 둘러싸여 로카곶과 신트라 산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절묘한 땅에 복 받은 골프장이 펼쳐져 있었다.

2001년 오픈한 챔피언십 코스 OITAVOS GC(파 71, 6303m). 현대적 감각의 클럽하우스에 들어서면 사면의 통유리를 통해 코스 전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얼핏 보이는 코스는 스코틀랜드의 링크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실제로 라운드를 해보면 바다와 산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코스는 홀별로 매우 다채로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몽글몽글한 우산 소나무가 빽빽한 마운틴 홀, 바다 바람에 깎인 부드러운 사구 위에 얹혀진 듄스 홀, 바다를 향해 열린 씨사이드 홀.... 특히 이곳만의 독특한 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과 야생식물들은 생태학적으로도 보호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유럽 골프장 중에는 처음으로, 전 세계 골프장 중에서는 두 번째로 생태 보호 구역으로 선정된 골프장이라니 모름지기 한 발 한 발 내대딜 때마다 조심하고 아이언 한 샷 한 샷 아끼고 아낄 일이다.

골프의 또 다른 변수 바람 또한 대단하다. 대서양은 지중해와는 전혀 다른 골프 환경을 만들어낸다. 매니저의 표현대로 OITAVOS GC는 어디로 튀고, 어떻게 변할지 몰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매력 충만한 여인’처럼 늘 긴장되는 그런 코스였다.

이다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