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남세스런 금감위 '서비스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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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수익증권 환매 연기 조치 이후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위원회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면 금감위가 금융시장 안정에만 매달려 투자자 보호라는 또다른 임무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금감위는 당초 전체 투신사 수탁고 중 대우채 비율은 평균 7%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라면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주말 대우채 비율이 공개되자 편입 비율이 60~70%가 넘는 수익증권이 속출한 것이다.

특히 수시입출금 상품인 MMF를 아무런 실태파악도 없이 환매 제한 대상에 넣어 전세금이나 학자금 같은 필수 자금을 잠시 넣어둔 고객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지난 3월부터 시판된 신종MMF의 경우 투기등급의 회사채나 기업어음 (CP) 을 편입시키지 못하게 돼있어 투신사들의 불법운용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투신협회가 금감위에 건의한 대책에도 "신종MMF의 경우 운용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경우가 있어 차후 소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고 지적했을 정도다.

이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금감위는 감독 소홀로 고객들의 재산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금감위는 아무 대책도 없이 "일부를 환매 제한 대상에서 풀어주면 다른 사람들도 안 풀어줄 수 없다" 는 원칙론만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금감위측은 MMF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나서야 각 투신사에 MMF상품에 대우채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MMF가입자들은 아무때나 자유롭게 돈을 찾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음에도 수시입출금 상품은 담보가 설정되지 않는다는 규정상 수익증권 담보대출마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금감위는 마침 18일 '금융소비자 서비스 헌장' 을 발표했다. 헌장의 골자는 금융당국이 ▶소비자 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소비자편에서 활동하며 ▶소비자 요구를 적극 수용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MMF가입자는 분명히 금융 소비자다. 과연 그들이 이 헌장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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