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보안법 개정…번지는 색깔론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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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 몰아치는 野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끈질기게 괴롭혀 온 게 있다.

다름 아닌 '색깔론' 이다.

그것을 한나라당이 연이틀째 거론하고 있다.

金대통령의 재벌개혁.국가보안법 개정 방침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김태동 (金泰東)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의 개혁관련 발언도 '색깔론' 시비의 호재가 됐다.

17일에는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대여 (對與) 공세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기자간담회를 자청, 金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金대통령의 재벌개혁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것" "대중적 인기주의에 편승한 위험한 접근법" 이라고 단정했다.

李총재는 반 (反) 자본주의적인 재벌정책의 사례로 대우 해체와 삼성자동차 문제 등을 열거했다.

"정부가 이들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압박을 동원,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했다" 며 "재벌의 폐단은 고치되 그 순기능은 살려야 한다" 고 주장했다.

보안법 개정과 관련해 李총재는 "불고지죄 조항을 아예 없애버려 '간첩인줄 알면서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고 반문했다.

8.15 경축사에 북한 미사일 재발사 문제 등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을 들어 "국가지도자가 대북문제를 이처럼 소홀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고 지적했다.

대변인단도 가세했다.

4개의 성명.논평을 통해 청와대와 국민회의를 따발총식으로 공격했다.

표현도 李총재보다 훨씬 과격했다.

이사철 (李思哲) 대변인은 "현 정권의 경제개혁은 사회주의적 변혁이 아닌가" 라고 비난했다.

장광근 (張光根) 부대변인은 김태동 위원장을 겨냥, "사회주의국가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지경" 이라고 색깔공세를 폈다.

한나라당은 보수층과 여당의 간격을 벌이기 위해 계속 청와대와 국민회의를 공격할 방침이다.

이상일 기자

◇ 받아치는 與

국민회의와 청와대는 재벌개혁과 국가보안법 개정 방침에 대한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대해 17일 역공을 취했다.

국민 다수의 지지가 뒷받침되고 있는 사안인 만큼 야당의 정치공세를 초반에 제압한다는 정면돌파 전략이다.

이만섭 (李萬燮) 총재권한대행은 "재벌개혁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이고, 보안법 개정은 불고지죄 등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하는 일이 없도록 고치자는 것" 이라며 "보수니 혁신이니 하는 논쟁은 잘못된 얘기" 라고 못박았다.

"세계가 21세기를 준비하며 달려가고 있는데 한나라당은 19세기로 회귀하고 있다" (韓和甲사무총장) "지역감정과 색깔론으로 정권을 유지해온 구태의연한 자세의 반복" (金玉斗총재비서실장) "한나라당의 당론은 DJ에 대한 무조건 반대" (鄭東采기조위원장) 등 주요 당직자들도 비난을 쏟아부었다.

이영일 (李榮一) 대변인은 고위당직자 회의가 끝난 뒤 한나라당을 '재벌과의 정경유착에 의해 만들어진 정당' '국가보안법을 악용해 무고한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하면서 생겨난 과거 군사정권의 후예' 로 규정했다.

그는 "이회창 총재가 21세기를 대비해 만들겠다는 뉴밀레니엄 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에 사상시비의 소지가 있는지, 재벌개혁이 사회주의적 발상인지 스스로 검토한 뒤 국민 앞에 밝혀야 할 것" 이라고 李총재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개혁이 '재벌해체' 로 확대 해석되고 국가보안법에 대해 우당 (友黨) 인 자민련이 "큰 틀의 개정은 절대 불가" 라는 입장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논쟁은 피한다는 생각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재벌개혁과 국가보안법 개정은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만큼 야당과 불필요한 정쟁을 벌이기보다 민심과 여론에 따라 개혁에 임할 것" 이라고 설명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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