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아야 낮은 것이 보이더라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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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천지변화를 한 그릇의 수제비 국으로 끓여낸 풍경 #유홍준이 새로 걷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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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자는 연못이나 계곡 가에 지을 때 위험할 정도로 물 가까이 지었다. 정자에서 풍광을 내려다볼 때 시선이 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물로 떨어지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강선루의 기둥 하나가 계곡에 빠져있다.
지금은 광주에서 순천으로 가는 27번 국도가 4차로에 시속 80km로 달릴 수 있는 반듯한 길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산굽이 따라 강물 따라 느리지만 운치 있게 돌아갔다.

우리의 차가 곡성 태안사를 저만치 두고 보성강변을 따라 가는데 캐서린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허름한 휴게소에 세웠다. 모두 잠시 차에서 내려 유유히 흐르는 보성강과 강 건너 논, 발 아래 작은 마을, 그리고 먼 산을 무슨 큰 구경거리인 양 바라보았다. 다시 차에 올라 운전하면서 캐서린에게 물었다.

“사진 잘 찍었습니까?”

“물론이죠. 참 아름답습니다. 나는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지금처럼 산과 들과 마을과 강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풍광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신네 나라의 사람들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대해 불만만 말하던 그가 이 평화로운 풍광 앞에서 목소리마저 나긋나긋해지는 것이 반갑고도 고마워 추임새를 넣듯 대화를 이끌어갔다.

“특히 산이 그렇습니다.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 등산이라고 하면 전문 산악인이나 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한국인에게 산은 곁에 두고 살면서 언제 어느 때나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오르는 대상입니다. 한국인에게 산은 일상의 공간인 셈입니다.”

“그렇군요. 산이 높이 솟은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겹쳐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 산을 보니 동양화에서 산을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알 수 있겠네요.”

그는 미국의 시카고 지방에 살고 있었으니 우리의 산등성을 보고 그런 이국적 감정을 느낄 만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미국에서 해발 4,000m가 넘는다는 파이크스피크를 자동차로 올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싱거운 산이 다 있는가 허망했던 기억이 났다. 그 산은 몸뚱이 하나가 달랑 산이었다. 그래서 캐서린에게 다시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저렇게 생긴 산을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deep mountain)이라고 합니다. 내가 뉴욕에서 만난 동양미술 큐레이터에게 한국의 사찰은 깊은 산속에 있다고 말했더니, 그는 평소 내 영어가 서툰 것을 알고 산은 깊은 것이 아니라 높은 것이라고 교정해 주면서 깊은 강(deep river)은 있어도 깊은 산은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할 말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내 영어가 틀렸습니까?”

“깊은 산이라…. 그것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완전히 한국화한 영어(Koreanized English)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풍광에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캐서린은 미소를 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deep mountain’을 몇 번인가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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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에는 여러 개의 못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절문 가까이에 있는 이 삼인당은 가운데 있는 섬이 기능적으로, 미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암사 진입로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고 나는 이들과 함께 매표소를 지나 진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이들에게 절까지는 약 25분 걸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다고 절 종무소에 연락하여 편의를 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절집 안까지 차를 타고 들어간 일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조경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다. 약 반 시간 걸리는 이 5리 길 진입로는 공간적으로, 시간적으로 속세와 성역을 가르는 분할공간이자 완충지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사에는 반드시 모두 저마다의 특징을 가진 진입로가 있다.

그 진입로는 산의 형상에 따라 그 지방의 식생(植生) 환경에 따라 다르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길, 하동 쌍계사의 10리 벚꽃길, 합천 해인사의 가야동계곡길, 장성 백양사의 굴참나무길, 영월 법흥사의 준수한 소나무숲길, 부안 내소사의 곧게 뻗은 전나무가로수길, 영주 부석사의 은행나무 비탈길, 조계산 송광사의 활엽수와 침엽수가 어우러진 길….

어느 절의 진입로가 더 아름다운지 따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중에서도 선암사 진입로는 평범하고 친숙한 우리 야산의 전형으로, 줄곧 계곡을 곁에 두고 물소리를 들으며 걷게 된다. 그러나 어느 만큼 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그때 그때의 인공 설치물이 이 길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게 한다.

해묵은 굴참나무가 여러 그루 늘어선 넓은 공터를 지나면 키 큰 측백나무를 배경으로 한 부도밭이 나온다. 부도밭을 지나면 장승과 산문(山門) 역할을 하는 석주(石柱) 한 쌍이 길 양편에 서 있고, 여기서 산모서리를 돌아서면 아름다운 승선교(昇仙橋)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난다.

승선교를 지나면 강선루(絳仙樓) 정자 밑을 지나 삼인당(三印塘)이라는 타원형의 연못에 이르고, 여기서 야생 차나무가 성글게 자라는 산모서리를 가볍게 돌면 비로소 ‘조계산 선암사’라는 현판이 걸린 절문 계단 앞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행복하게 걷는 이 산책길은 절대자를 만나러 가는 길임을 은연중에 알려준다. 느긋이 따라오는 캐서린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많이 걸어도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매우 좋아요. 길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크기(human scale)로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돌아가도록 멋있게 디자인되어 있네요.”

그가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신기했다. 나는 평소 이 길은 그냥 계곡을 따라 밟고 다니며 난 길이고, 승선교 이후에 가서야 디자인 개념이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런 인공이 가해진 것 없는 산길을 인간적 크기로 낸 것은 그 자체에 디자인 개념이 들어 있는 것으로 그에게 비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말한 인간적 크기는 상실했다. 우리가 다녀온 뒤 얼마 안 되어 이 진입로는 자동차 두 대가 비켜갈 수 있는 크기로 확장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26년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尋春巡禮)>라는 제목을 걸고 남도 기행문을 쓸 때, 순천에서 선암사로 들어오는 길이 찻길로 넓혀진다는 계획을 듣고 큰 걱정을 하면서 떠났는데, 그때 이미 본래 산사 진입로의 디자인 효과는 무너져버린 것이었고, 그나마 인간적 체취를 느낄 수 있던 좁은 길이 이제는 완전히 자동차 두 대가 비켜갈 수 있는 찻길로 되었으니 이를 피할 수 없는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훗날 안목 있는 후손들은 이 길을 다시 좁혀 인간적 크기로 환원할 것이다. 그것이 문명이 발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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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는 마스터플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증축해 묵은 동네에 온 듯한 편안함이 있다. 그러나 그 공간 구성은 대단히 건축적이고 기능적이며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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