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25. 나는 이렇게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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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96년 창비가 창간 30주년을 맞이했을 때, 한학자 이우성 (李佑成) 선생은 법고창신 (法古創新, 옛 것을 본 받아 새것을 창조한다) 이란 휘호를 선사하셨다.

온고이지신 (溫故而知新) 을 한 걸음 발전시킨 연암 (燕巖) 박지원 (朴趾源) 의 이 근사한 문구는 창비의 나아갈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였다.

양심적 지식사회와의 광범한 연대를 바탕으로 문학과 사회 양쪽에서 민족적 위기를 타개할 민중적 의제 (議題) 의 탐구. 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30년의 이 전통을 자산으로 삼아, 이제 창비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과감하게 창조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낡은 신은 죽고 새로운 신은 도래하지 않은 미묘한 회색지대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이 표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19세기와 20세기와 21세기를 비동시적 동시성으로 추구해야 할 터인데, 낡은 사회주의의 붕괴와 브레이크 없는 자본주의의 질주를 넘어설 한국발 (發) 대안은 무엇인가.

국가의 우상에 둘러쌓인 개발독재의 망령과 시장의 우상을 섬기는 신자유주의의 대공세를 가로질러 우리 사회를 운용할 새로운 원리를 어떻게 생활속에서 발견할 것인가.

이 젊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창비는 새 개념의 창안, 새 능력의 개발, 새로운 관계망의 구축 속에서 부단히 젊어질 것이다.

최원식 교수 <인하대.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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