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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亭 변관식 대표작'외금강 옥류천' 제자가 그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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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근대 산수화의 거장 소정 (小亭) 변관식 (卞寬植.1899~1976) 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외금강 옥류천' 이 제자의 작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실은 16일 발행되는 미술월간지 '아트' 창간준비호에 실린 최광진 (37) 전 호암미술관 연구원의 '외금강 옥류천도의 진위와 예술성' 이라는 글에서 공개됐다.

최씨는 이 글에서 "지난 2월 '소정과 금강산' 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소정의 제자 조순자 (60) 씨가 63년 제 12회 국전에 출품, 입선한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전시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고 밝혔다.

현재 이 작품은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몽유금강' 전에도 출품돼 있다.

63년도 국전 도록에도 이 작품은 왼쪽 아랫부분에 조씨의 이름이 쓰여있고 '금강옥류' 라는 제목으로 수록돼 있다.

그러나 현재 소정 작품으로 알려져온 '외금강 옥류천' 은 이 서명이 칼로 도려내진 상태다.

조씨 측에 따르면 이 그림은 당시 소정이 뼈대를 잡아주고 그 위에 조씨가 소정이 그린 다른 옥류천 작품을 참고해 그려 국전에 냈다는 것. 60~70년대에는 스승이 제자의 그림에 구도를 잡아주거나 가필을 해주는 등의 지도를 하는 것은 미술계의 관행이었다.

조씨 측은 "언제부터인가 소정 것으로 둔갑해 돌아다니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스승의 명예와 관련자들의 입장 등을 고려해 밝히지 못했다" 고 설명했다. 조씨 측은 변조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작품은 소정이 타계한 이듬해인 77년 '계간미술' 봄호부터 소정 작품으로 소개되기 시작, 85년 현대화랑과 동산방화랑이 공동주최한 '청전과 소정' 전에서 최초로 일반에 전시됐다.

87년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근대회화 백년' 전에도 등장했으며, 90년대 들어 발간된 소정 화집마다 빠짐없이 수록됐다. 몇몇 평론가들은 "대표작으로 손꼽아 손색없는 명품" "최전성기의 걸작" 으로까지 평할 정도였다.

이 점에 대해 한국미술연구소 홍선표 소장은 "스승이 손봐줬다고 해도 공식적으로 조씨 이름으로 입선까지 한 작품이니만큼 소정 작품이라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윤범모 경원대 교수 (회화과) 는 "후학들의 연구자료가 되므로 제자 작품인 것이 확실한 이상 각종 문헌의 수정이 뒤따라야 한다" 고 지적했다.

한편 '몽유금강' 전을 기획한 이태호 전남대 교수는 "사전에 조씨의 국전 입선작이란 사실은 알았지만 작품 특색과 수준으로 미루어 소정이 직접 제자에게 그려준 진품이 틀림없다는 판단을 내려 전시하게 됐다" 고 말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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