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우선납품등 '집안식구'봐주기 사라진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두산 계열인 OB맥주는 간판상품인 OB라거 맥주의 광고 대행사를 오리콤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를 위해 이미 공개적으로 광고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

OB 관계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무조건 계열사에 맡기는 것보다 공개 경쟁에 부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 고 배경을 설명했다. 아직 결말은 안 났지만 OB맥주의 이런 움직임은 업계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계열사의 홀로서기가 가속화되고 실리 위주의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한 식구 챙겨주기' 관행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더이상 계열사 제품이라고 무조건 우선 구매하지 않는 것은 물론 경쟁력이 약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특히 기업 인수.합병, 외자유치 등을 통해 외국계 자본의 경영 참여가 본격화 되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OB맥주의 광고대행사 이전 추진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인터부르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한 케이스.

삼성전자의 경우 그동안 삼성전기 등 계열사 우선납품 방식을 과감히 털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연간 구매액이 1천억원대에 달하는 콘덴서는 원칙적으로 계열사인 삼성전기에서 80% 이상 납품받았으나 요즘은 그 비중을 확 낮추면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견업체 비중을 늘리고 있다" 고 밝혔다.

현대 계열 광고대행사인 금강기획도 현대가 기아자동차를 인수함에 따라 기아차 광고를 '손쉽게'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기아가 공개 경쟁에 부치는 바람에 일을 따느라 애를 먹었다.

최근 쌍용에서 계열 분리된 굿모닝증권 역시 그룹이 나서 계열사 임직원들의 구좌를 개설하도록 하는 등의 측면지원은 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도 한 계열사 내에서도 사업부문 별로 회계단위를 쪼개 개별 사업장의 실적을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금 흐름.회계제도를 부문별로 체크,가능성 없는 사업은 빨리 도태시키자는 것이 시스템 도입의 주목적.

한화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자력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는 사업부문은 그룹은 물론 계열사 차원에서도 지원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적자 생존 시스템' 으로 돌입했다" 고 설명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계열사 분리와 그룹 의식이 희석되고 실리 위주의 경영이 확산 되면서 한 집안 식구 챙겨주기 관행은 갈수록 사라질 것" 이라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