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슈퍼컴'은 계산만 판단은 예보관 몫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 5일 국회의 기상청 업무보고 자리에서 '슈퍼컴퓨터' 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의원들은 마치 이번 수재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슈퍼컴인 것처럼 질타를 퍼부었다.

그렇다면 슈퍼컴이 이번 재해의 '원죄' 역할을 했을까. 먼저 슈퍼컴의 역할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슈퍼컴은 말 그대로 계산 잘하는 기계다.

1초에 사칙연산 (덧셈.뺄셈.곱셈.나눗셈) 을 1천2백80억번 할 정도다.

슈퍼컴은 지상.고층.위성 자료를 모두 받아들여 계산한다.

그러나 슈퍼컴은 판단력이 없다.

판단은 예보관 몫이다.

중부지방 폭우가 시작된 지난달 31일로 되돌아가 보자. 이날 0시 슈퍼컴은 같은 시간대 지상.고층.레이더 등에서 관측돼 입력된 자료들을 가지고 1시간 동안 계산작업을 한 뒤 예보관에게 예상 일기도를 그려줬다.

그때 경기 북부지방의 예상강우량은 2백㎜ 안팎. 예보관들은 이 자료를 근거로 집중호우를 예상했다.

예보관들은 이어 각 지방 기상청 예보관들과 화상회의를 한 뒤 최종적으로 오전 5시 예보문을 각 기관에 통보했다.

그 예보문은 "서울.경기.강원지역에 최고 2백㎜ 이상의 강우량이 예상된다" 는 내용이었다.

이때 '이상 (以上)' 은 비가 더 많이 올 가능성이 있다는 예보관의 판단이 개입된 것이다.

결국 비는 이틀간 최고 5백㎜ 이상 내렸다.

같은 시간 일본 기상청 슈퍼컴도 한반도 강우량을 예상했지만 강우량은 50㎜ 안팎이었다고 한다.

기상청 관계자는 "정확한 강우량 예측은 슈퍼컴이 하는 게 아니라 슈퍼컴에 탑재된 수치 예보 모델에 달려 있다" 고 말했다.

결국 슈퍼컴은 빠르고 정확한 예보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셈이다.

아무리 계산 속도가 빠른 슈퍼컴이라 하더라도 관측자료가 불충분하다면 1백% 정확한 예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다.

1백60억원 상당의 슈퍼컴이 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관측망과 수치모델 개발에 대한 투자가 시급하다.

강홍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