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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역주의] 7. '극복의 길' 결산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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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까지 지역문제가 심각하다면서도 지역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는 한번도 없었다.

88년 한국사회학회의 조사를 제외하곤 기껏해야 지역문제가 심각하다는 등의 반응만 확인하는 단편적인 조사가 고작이었다.

그런만큼 이를 해결하기 위한 공론화가 한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었다.

밀레니엄 기획취재팀이 약 4개월여 동안 일곱번에 걸쳐 4천4백여명에게 전화를 통해 본격적이고도 광범위한 조사를 한 것도 지역문제의 실상과 허상을 제대로 앎으로써 지역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공론의 장을 마련코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국내 초유의 이번 조사를 통해 새로운 지역주의의 등장을 확인하는 등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에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이와 관련, 지역문제 전문가 3인을 통해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들의 대담이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에 첫단추를 끼우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 참석자

조명래 단국대 정경대교수.경제정의시민연대 운영위원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

김만흠 서울대 사회과학원 특별연구원

▶조희연 = 이번 시리즈는 개발독재시대를 거쳐 형성돼 온 지역주의가 현 정부가 집권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포착하려 했다.

특히 호남이 자신의 차별이나 소외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감소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보여준 점이 의미가 있었다.

충청.강원 등 기타 지역에서의 지역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증대했다는 점도 다원적 지역의식의 발로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역사적이고 사회심리적으로 구조화된 호남차별이 현실생활에서 엄존한다는 점도 관심있게 주목했다.

▶조명래 = 그간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는 데도 지역주의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본격적인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지역감정의 변화양상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기에 이번 보도의 시점은 매우 적절했다.

나아가 부분적인 소규모의 조사는 있었지만 언론이 대규모 표본을 가지고 한 것은 보기 드물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이밖에 충청.강원지역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새로운 사실도 보여주고 있지만 무엇보다 기존의 부정적 갈등의 골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김만흠 = 아쉬웠던 점은 88년 사회학회 조사와 너무 대비시켰다는 점이다.

정치부문 조사에서는 어느 지역에서 누구한테 몰표가 주어졌나 하는 단순비교보다는 당시 선거구도와 쟁점이 무엇이고 명분이 무엇이냐도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를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번 보도를 계기로 지역주의의 논의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번 자료가 발전적 논의의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조명래 = 시리즈에서 '지역주의' 라는 용어를 쓴 것에 주목한다.

이제껏 '지역감정' 이란 말을 지배적으로 써왔고 이는 상당히 가치평가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란 용어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객관적 개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조희연 = 주목할 만한 점은 영.호남 갈등 구도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영남 = 패권지역, 호남 = 차별.소외지역으로 동일시돼 왔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지역주의적 인식구도에 분명 발전적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또 이번 조사에서 호남을 기피지역으로 인식하는 것이 감소했다는 결과는 기존의 지역주의의 아킬레스건 (腱) 으로 보이는 호남차별 문제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기존 수직적 지역관계에서 수평적 지역관계로의 변화가 가져오는 긍정적 측면이라 본다.

현 정부가 지역등권적 정책을 통해 나머지 반사적 지역의식이 고착되지 않도록 예방한다면 지역주의가 현재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만흠 = 이번 중앙일보 시리즈는 사회전반에 내재된 지역주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결국 지역 불균등 구조와 서로 맞물려 있는 정치권력구조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정치권력구조의 지역주의적 성향을 단순히 무조건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바탕구조 속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선거때만 지역주의 문제가 제기됐는데 이제는 선거가 아닌 때도 이곳저곳에서 지역주의 문제가 불거져나오고 있다.

이것은 지역주의나 갈등이 악화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해소되는 발전적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조명래 = 신지역주의에 대한 적극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동안 지역간 격차나 차별은 우리의 정치경제구조가 중앙집권화된 상황에서 비롯됐다. 사회 희소자원의 배분을 중앙에서 하게 되는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어느 지역을 배경으로 가진 집단이 주도권을 행사하느냐를 둘러싸고 지역간 경쟁구도가 생겨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생겨난 신지역주의는 중앙적 차원의 자원의 불평등 배분에서 생겨나기보다는 지역 내부로부터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산업화에 편입되면서 생겨난 차이에 바탕을 둔 것이다.

▶조희연 = 이제는 지역차별과 관련된 객관적 현실을 합리적인 공론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지역차별이나 인사차별 등의 문제를 합리적 토론의 자리로 끌어들여야 한다.

예컨대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민감한 부분의 하나로 고위직 공무원 선발 등 엘리트 충원 과정의 불균형을 들 수 있다.

이의 해결방안으로는 인재의 지역할당제나 고시제도의 지방정부 이양, 인재선발의 지방분권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 지역적 불균형이나 차별을 개선하는 투명한 대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군 장성이나 고위 공직자, 대학교수 등의 선발과 관련해 분기별이나 연도별로 일정한 시기를 정해 인사에 있어 지역불균등을 통계적으로 검증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문제점을 정책권고 사항으로 제시하는 것과 같이 인사불균형 문제를 투명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김만흠 = 정치 엘리트의 지역적 분포와 관련해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동안 특정지역이 권력 요직을 독점했다는 비판은 어느 짧은 시기에 독점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십년간 장기적으로 독점했기 때문이다.

지금 김대중 (金大中) 정부가 공정하게 안배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설사 특정지역에 집중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정상적으로 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장기적으로 특정세력이 독점한다면 문제다.

그럼에도 단순히 권력 요직을 과거에는 영남세력이 독점하다 이제는 호남이 독점한다는 식의 단순비교는 문제의 핵심을 잘못 본 것이다.

▶조희연 = 지역주의 극복은 정치개혁과 일정하게 연관돼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지역주의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탈지역주의적인 근대적인 정당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80년대 중반 이후에 문제가 된 지역주의는 개발독재시기의 정치질서를 민주적 정치질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인 왜곡현상이라고 본다.

지역주의를 악용하는 정치.경제구도에서 이념적.정책적 대결을 지향하는 근대적 정당질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탈지역적인 국민적 통합정당을 만드는 길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녹색당과 같은 새로운 탈지역주의적인 정당의 출현을 통해 기존의 지역주의적인 경쟁구도에 변화압력을 가해 전체적으로 정당간의 경쟁구도에 변화를 모색하는 길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만흠 =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총체적인 분권화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권력제도 차원에서 지방이 중앙에 참여할 수 있는 양원제 도입 등을 제안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향은 거대 여야 정당이 아닌, 새로운 다당제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신진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정당체제로 보면 거대 정당을 지향하기보다는 다당제로 나아갈 수 있게 제도적으로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조희연 = 기존 지역주의의 분열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세력이 제도공간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도도 현재는 진입장벽이 높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집단이 진출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의미에서 개방적인 방향으로 짜여야 한다.

▶조명래 = 지역주의나 지역감정이 이제는 정치.경제적인 영역에서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확장돼 있다.

지역과 관련된 쟁점들이 일상생활영역 전반에 침투하고 있어 정치.경제제도 부문에서의 분권이나 탈지역적인 조건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간 갈등의 시민사회적 대립기제를 없애주는 것도 시급하다.

시민사회도 국가 전체 차원으로 통합돼 있기에 시민사회를 통해 지역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

시민사회단체가 준정치세력으로 발전한다면 대안적 힘이 될 수 있고, 정치적 이슈를 정략적 이슈로부터 생활관련 이슈로 바꾸어 지역주의의 나쁜 점을 희석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만흠 = 시민사회운동과 관련, 지역주의를 타파하자는 원론적인 주장은 설득력과 실천성을 갖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특정한 지역차별 문제에 어떻게 실천적으로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지, 지역감정을 악의적으로 사용한 사람을 어떻게 제재할 수 있는지 등 실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조명래 = 시민사회의 건전한 정치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제3의 주체로서 지역문제 해결에 의도적으로 참여하면 곤란하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들이 시민사회 자체의 쟁점을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더 효과적일 것이다.

▶조희연 = 지역주의는 이제 부정적인 측면의 극대치에 와 있다.

지역주의는 근대적 유물로서 이를 극복하기 전에는 한국사회가 더 나아갈 수 없다. 탈지역주의화하지 않고는 21세기에 도약할 수 없다.

저항적인 지역주의를 배경으로 탄생한 국민의 정부가 패권적 지역주의에 안주하거나 혹은 관료화할 경우 시민사회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는 지역주의가 비집고 들어설 수 있는 기반 자체를 극복해가는 개혁의 심화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현 정부의 자기성찰과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정리 =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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