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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서 먼곳 모기 덜물고 국내 거미 대부분 독없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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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름은 벌레의 계절. 집안팎은 물론 휴가지에서도 벌레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벌레를 통한 생태학습에는 가장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벌레의 이면을 알면 덤으로 피하는 요령도 생긴다.

지렁이는 이른바 '벌레공포증' 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생물 중 하나. 그러나 이런 지렁이가 발암물질인 PCB를 제거하는데 단단히 한 몫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건국대 국제공동연구팀은 최근 연구에서 PCB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지렁이가 있을 때 훨씬 효과적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렁이가 흙을 잘 뒤섞어 줘 이런 효과가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풀이한다. 지렁이의 약점은 땅이 축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캠핑시 지렁이를 피하려면 마른 장소를 택하면 된다.

지렁이를 자세히 보면 몸에 억센 털이 있는데 이는 땅속에 있는 자신을 새가 끄집어 낼 때 버티기 위한 것. 이동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모기는 여름철 악충 (惡蟲) 의 대표주자. 인간의 천적으로 태어난 '운명' 인 만큼 퇴치가 쉽지않다. 모기는 조명이나 음향에는 거의 무반응. 불빛을 밝혀도, 스피커 볼륨을 키워도 쫓아낼 수 없다.

그렇지만 허점이 있다. 날아다닐 때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는 것. 수십초 이상 계속 비행할 수 없으므로 가능한한 벽에서 멀리 떨어지면 모기로부터 공습받을 확률이 줄어든다.

산골이나 농촌의 물가에서 가장 위협적인 벌레는 거머리. 우리 나라에선 참거머리.말거머리.돌거머리가 흔하다.

한국과학기술원 강계원교수는 "사람을 무는 것은 주로 방죽에 사는 참거머리" 라고 말한다. 맑은 물에 사는 말거머리나 돌거머리는 징그럽기는 하지만 겁낼 필요는 없다는 것. 강교수팀은 최근 거머리에서 혈액이 굳는 것을 막는 단백질을 추출해 상용화를 시도하고 있다.

귀찮기 짝이 없는 파리 역시 살충제말고는 뾰족한 구충수단이 없다. 다만 파리가 좋아하는 특별한 '음식' 이 없는데도 파리가 많이 있다면 대기오염이 덜한 지역으로 밝혀진 것이 위안인 셈.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 연구팀이 오존의 농도를 달리해 파리를 키운 결과 고농도일 경우 파리의 사망률이 현저히 높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의 캐롤 크로스는 "파리는 에너지 소모가 매우 커 대기오염물질을 흡입할 경우 다른 벌레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것이 특징" 이라고 말했다. 파리가 오래 날 수 있는 것은 체중에 비해 산소를 많이 들이마셔 큰 에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거미는 대부분 물려도 큰 해가 없는 것들. 다리가 4쌍인 거미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관찰하면 거미줄 가운데 끈적이지 않는 것만 타고 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미줄을 치는 것은 본능이다.

한 실험결과 거미는 수면제를 먹여도 집을 짓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다만 이 때 지은 그물은 엉성했다는 것. 나비.나방은 주변에서 가장 흔한 곤충. 나방 중에는 나비 못지 않게 화려한 것도 있어 헷갈리기 쉽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휴식을 할 때 나비는 날개를 쳐들고, 나방은 수평으로 편다는 것. 미국 코넬대 연구팀은 최근 일부 나방의 경우 교미시 암컷에 거미가 싫어하는 특수한 화학물질을 같이 넣어주어 거미로부터 신부와 알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곤충을 중심으로 한 벌레는 최소 수백만종으로 추산된다. 과학자들은 종종 "지구를 찾은 외계인이 종류나 수만으로 판단한다면 지구의 주인은 벌레라고 생각할 것" 라는 농담을 할 정도다.

서울대 김영수교수는 "벌레는 생태사슬에서 대단히 중요한 구성원들" 이라며 "한 종류에서 문제가 나타나도 이미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을 만한 타격을 받았다는 징후일 수 있다" 고 말했다.

과거 인도정부가 말리리아 모기로 엄청난 사망자를 내면서도 방사능을 써서 수컷을 불임화 하는 기술개발에 반대한 것은 해충마저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익충 (益蟲).해충이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공존의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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