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를 새 가족으로 맞이한 박영성(왼쪽)씨가 남편 권태식씨와 아이의 책가방을 챙기며 웃고 있다. “친구도 사귀기 시작했는데 상처를 받을까 걱정된다”는 박씨의 뜻에 따라 슬기의 사진 촬영은 하지 않았다. [울산=송봉근 기자]
추석을 3주 앞둔 14일 슬기는 엄마를 잃었다. 슬기의 단 하나뿐인 가족이었다. 2년 넘게 위암을 앓은 엄마는 미혼모였다. 일곱 살 때까진 종종 슬기를 찾던 아빠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슬기는 친척도 없다. 올여름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뒤 슬기는 교회 목사님 집과 장로님 집 등을 한 달씩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 완전히 혼자가 됐다.
그런 슬기에게 최근 가족이 생겼다. “이모라고 부르라”며 찾아온 파마 머리 아줌마였다. 슬기는 박영성(50)씨의 손을 잡고 경북 구미에서 울산으로 이사 왔다. 지난달 21일 엄마가 돌아가신 지 딱 일주일 되던 날이다.
박씨가 슬기의 사연을 접한 건 지난달 초 구호단체 굿네이버스의 소식지에서였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엄마와 사는 아이. 그는 바로 서울의 단체에 전화해 “내가 딸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5년 전부터 갈 곳 없는 아이 셋을 더 길렀다. 1남1녀가 어느 정도 크고 남편의 사업도 자리를 잡자, 평소 하고 싶던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자 엄마에게서 자라던 일곱 살 태호(가명)와 아빠가 직업을 잃은 영윤·영식이(가명) 남매가 박씨의 집에서 2년씩 살았다. “제가 열여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인지 엄마 없는 아이를 보면 너무 마음이 아파요. 슬기도 한창 사춘기인데 엄마를 잃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슬기가 다 자라도록 키워주고 싶다는 얘기에 남편과 미국 유학 중인 딸은 찬성했지만, 대학생 아들(19)은 걱정을 내비쳤다. “다 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게 쉽겠느냐”는 것이었다. “네가 열두 살에 고아가 됐다고 생각해 보라”는 박씨의 말에 아들은 하루를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자신의 방도 슬기에게 양보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박씨의 가족은 조금씩 마음을 열었지만 슬기는 아니었다. 울산에 온 지 하루 만에 박씨에게 “구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 어른과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불편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지내보자”는 박씨의 설득에 눌러앉게 됐다. 지금은 ‘떡볶이 먹고 싶어요’ ‘리코더 사 주세요’ 하는 문자를 보낼 정도로 스스럼이 없어졌다. “이것저것 사달라고 어리광 부리는 걸 보면 정말 우리가 자기 편인지 시험하는 것 같을 때도 있어요.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면 믿음을 가지게 되겠죠?”
박씨가 슬기의 성과 호적은 그대로 두기로 한 것도 슬기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돌아가신 엄마와의 마지막 끈은 남겨주고 싶었다.
박씨는 지난달 30일 슬기와 쇼핑에 나섰다. 추석 때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게 될 슬기를 위해 새 옷을 사주려는 것이었다. “검은색 재킷을 사고 싶다”며 방문을 나서던 슬기가 박씨에게 물었다. “이모, 오빠야는 언제 와요?” 박씨가 “니는 오빠야만 좋나” 하고 웃어 보이자 슬기가 “제가 언제요” 하며 서둘러 신발을 신었다.
울산=정선언 기자